[생활] 이은봉 지음/실천문학사/ 139쪽/ 1만원

이은봉
이은봉
`광주역 근처 김밥천국에서 급하게 김밥 두줄 산다/ 검정 비닐봉지에 담겨 있는 슬픔 두 줄 (중략) 검정 비닐봉지를 펼쳐 설움 두 줄 먹어치운다/ 오늘도 눈물 두줄의 힘이 나를 서울로 밀고 간다/ 서울에는 무엇이 있나/ 아내와 자식들이 있다 사랑이/ 달리는 고속열차 역방향에 쪼그리고 앉아 깜박 잠든 채 꿈꾼다 천국을` -김밥 두 줄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직을 퇴직하고 고향 세종시로 돌아온 이은봉(66)시인이 새로운 시집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2018년 정년 퇴임 후 출간한 첫 작품집으로, 표제작 `생활`을 비롯해 총 62편의 시를 수록했다.

이 시인은 "시들이 자꾸 어려워지고 있다. 아무런 내포도 유추할 수 없는 관념적 진술의 시를 즐길 만큼 내 마음은 열려있지 못하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일련의 시들에 내가 나날의 삶에서 깨닫는 진리나 진실을 담으려고 했다"고 말한다.

이 시인은 일상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녹여내지 않고 추상적인 단어들과 막연한 진술로 포장한 요즘의 시들을 경계한다. 그래서 이번 시집도 `생활`이라 이름 붙였다. 자연에서 태어난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생명을 향한 경외와 겸손을 아름다운 한 편의 시로 길어 올린다. 구태여 어려운 말을 쓰지 않는다. 거실 귀퉁이에 놓인 무말랭이와 은행알에 시선을 두고, 시 속에 담백하게 담아낸다.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고향 세종시에서 밭을 일구고 일상의 바람을 만끽하는 자연인으로서의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쫓기듯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도 시인의 오감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순간을 또렷이 기억해낸다. 그가 가진 특유의 낙천성과 성찰의 미학은 시 `김밥 두 줄`처럼 입안에 김밥을 욱여넣고 서둘러 기차에 몸을 실어야 하는, 조금 서글프고 궁색한 상황조차 따뜻한 순간으로 전복시킨다. 독자를 현혹시키는 화려한 기교 대신 생활 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충남 공주(현 세종시) 출생 이은봉 시인은 1983년 `삶의 문학`에 평론을, 1984년 신작 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창작과비평)`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직을 퇴직하고 지난해 10월 대전문학관장에 취임해 시작(詩作)활동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세종마루시낭독회 회장, 세종인문학연구소 소장, 한국문예창작학회 평의원, 한국작가회의자문위원 등을 맡아 지역 문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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