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 줄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노 플랜.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 가족의 분투와 이들의 참담한 실패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미래를 계획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홍수가 나는 것도 계획에 없던 일들 중 하나다. 문제는 계획에 없던 일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가혹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다. 홍수 때문에 박사장(이선균) 가족이 만나게 되는 스트레스는 계획했던 캠핑을 취소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택(송강호)의 반 지하 집은 물에 완전히 잠기고, 변기에서는 오물이 끊임없이 역류한다.

가난하다는 것은 경제적인 차원에서 보면,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심리적 차원에서 보면 가난은 합리적으로 미래를 계획하기에 충분한 `심리적 자원`이 고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빈곤에 처한 사람에게 일상은 통제 불가능한 일들로 가득하다. 가난은 계획에 없던 수많은 스트레스를 제공한다. 통장 잔고는 바닥인데, 집주인이 갑자기 월세를 올려주든지 아니면 집을 비워달라고 한다. 가난이 유발한 스트레스는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미래를 계획하는데 필요한 심리적 자원을 갉아먹는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자원의 양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적 자원을 소모하면,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심리적 자원이 부족해진다. 집에 물난리가 나서 이를 수습하느라 혼이 쏙 빠진 사람에게 미래를 계획하는데 필요한 심리적인 자원이 남아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 경제적 빈곤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판단력을 떨어뜨린다.

집이 물에 잠길 정도의 큰 스트레스가 아니더라도, 부자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고민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한 연구에서는 자동차에 결함이 발견돼서 수리를 해야 하는데, 수리비가 180만 원이 나왔을 때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를 물었다. 자동차보험은 수리비의 10%만 보장해주는 상황이다. 따라서 수리비를 현금 일시불로 지급할지, 돈을 빌려서 다달이 원금과 이자를 물고 갚아나갈지, 아니면 수리를 하지 않고 운에 맡긴 채 당분간 차를 운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참여자들은 자동차 수리비 지출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한 다음에 유동성 지능검사를 받았다. 유동성 지능은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력과 판단력, 그리고 논리력과 관련된 지능이다. 결과에 따르면, 수리비에 대한 고민을 해도 부자들의 지능검사 점수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수리비 걱정 후에 지능검사 점수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의 사탕수수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사탕수수 대금이 입금되지 않아서 경제적인 걱정이 심했던 빈곤기에는 농부들의 유동성 지능검사 점수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금이 입금되어서 경제적인 걱정이 덜어지고 고 난 후에는 지능검사 점수가 다시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랍게도 수면연구와 비교했을 때, 경제적 걱정 때문에 발생하는 지능검사 점수의 감소 정도는 하룻밤 수면을 박탈했을 때와 맞먹는 크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인 걱정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밤에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생활하는 것과 유사한 정도의 크기로 우리의 마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계획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지만,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계획이기도 하다. 성공은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에게 주어질 확률이 높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곤은 심리적 자원을 고갈시켜서 미래를 계획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경제적 빈곤이 가장 먼저 무너뜨리는 것은 마음이다. 따라서 빈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마음을 지켜내기 위한 지원이기도 한 것이다. 전우영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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