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의 쳇바퀴를 벗어나 앞으로의 포부를 설정해 보는 게 요사이 정초의 모습 일게다. 비록 `작심삼일`로 무산되는 수많은 계획과 다짐이 게으른 우리 인간들의 한계라 치부하더라도, "올해는 꼭 금연", "3개월 내 10킬로 다이어트", "과장승진", 00대학교 합격", "싱글 탈출"등등의 수많은 염원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 동력이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새해와 더불어 환갑을 넘긴 나이가, 나에게도 이 꺾어지는 시점에 특별한 상념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2020년 새해는, 내가 20년 가까운 프랑스생활을 마치고 2000년 귀국하여 비슷한 기간을 우리 사회에서 지낸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 마침 이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준 대전일보의 제안은 이 지난 40년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했던 게 새해 아침의 생각이었고, 담당기자의 메일 하단에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매 달의 원고마감일은 적어도 `작심한달`의 관성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내심 용기를 내본다.

내가 귀국한 2000년대 초엽 나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모습은 먼저 `풍요로움`이다. 검소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유학생활도, 떠나기 전 우리 사회의 경제적 결핍도, 이런 인상을 강화했으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외환위기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당시만 해도 서양에서 일컫던 한강의 기적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당시 우리보다 2배 이상의 소득수준이었던 프랑스인들의 검소함과 비교해 보면, 이런 `흥청망청`의 분위기는 더욱 생경하기만 했다. 잘 먹고 잘 살게 됐으니 다행이지만, 내가 우려했던 가장 위험한 현상은 이런 천박한 부의 과시에서 일관적으로 드러나는 과도한 개인주의 발로였다. 당시 이전의 전재적 국가체제의 대안으로 문민정부가 제시한 가장 순 쉬운 대응은, 다른 모든 사회적 가치를 돈을 앞세운 개인주의로의 치환이었다. 부당한 군부독재와 관료권력에 숨죽여 살던 많은 시민들에게 돈의 크기로 줄을 세우는 이 방식은, 비록 끝자락이라도 자신들이 끼여 있다는 점에서 공정해 보였을 수도 있다. 결과는, 개인의 존재는 타인의 존중에서 비롯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버려지고 유아독존식의 야만적 개인주의만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것이다. 사회적 갈등조절기능은 사라지고 각각의 주장만이 만발하고 이제는 감기에도 병원 드나들 듯 법원의 문턱을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되는 사회에 사는 것이다. 요사이 대부분의 방송프로그램의 패널을 장악하고 있는 법조인들의 숫자도 이러한 우리 사회의 도덕적, 사회적 갈등조정기능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우울하기만 하다.

그리고 국가의 거대한 권력에 대한 대응장치로 `민원`이란 제도를 만든다. 짐직 이 거룩한 이름의 제도가 초기에 힘없는 시민들이 공권력에 대항하는 유용한 창구였다면 이제는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된 이 고발장려 문화는 온 사회의 주춧돌을 훼손하는 상황에 이른 듯 보인다. 별별 이름의 접두어가 붙은 `ㅇ파라치`제도가 난무하고 `청와대 청원`소식은 방송과 신문들의 단골주제가 되고, 국민신문고는 물론 각 지자체가 경쟁하듯 장려하는 청원제도는, 최초의 의도는 외면한 채 이제는 국론분열의 최첨단장치가 된 듯하다. 이 제도들을 입안하는 정치인들의 의도가 공익을 우선했더라도, 익명의 돌팔매질이 상대방을 죽음으로 이끌게 하고, 국민 태반을 이제는 도저히 화해 불가능한 극단적인 이념대결의 장으로 모는 현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고발문화의 확산은 시급히 재고되어야 한다. 실제로 앙심을 품은 개인이 그 동기를 공익으로 포장한 채 인터넷의 몇 줄로 몇몇 자영업자 문 닫게 하기는 아주 쉬운 일이 되었고, 행정관서의 주요업무가 이러한 악성 민원인들의 민원처리에 할애되고 있다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청렴, 공정`이란 미사여구로 포장된 이런 고발장려 정책들이 실제로는 서로모두를 의심하는 숨 막히는 사회를 도래케 하고, 이런 `사이다`식 정책들의 거품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이다를 마셔본 우리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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