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희망이다] 젊은과 역동의 베트남 ②

세림일렉트로닉스 공장 내부 모습. 사진=문승현 기자
세림일렉트로닉스 공장 내부 모습. 사진=문승현 기자
베트남에서는 `청춘`(靑春)을 일러 탄 쑤언(thanh xuan)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맑은 바람`이란 뜻이다. 베트남은 두터운 탄 쑤언 인구층이 만들어내는 생산과 소비의 훈풍을 맞으며 매년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1987년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이른바 `도이머이(doi moi) 정책`의 강도 높은 추진,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적극적인 문호 개방은 베트남 경제의 순항을 이끌고 있는 거시적 요소다.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국면에서 중국을 대체할 제조기지로 떠오르며 적지 않은 반사이익도 누렸다. 이 같은 대내외 여건 호조 속에서 베트남 청춘들은 경제발전의 급류에 앞다퉈 몸을 싣고 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에의 확신과 자신감이 넘쳐난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자국의 오늘을 목도하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내일을 꿈꾸는 베트남의 청춘들을 만나봤다.

◇"땅 사서 집 짓고 살고파"=현대알루미늄비나 인사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스물다섯 유엔(Duyen) 씨는 2016년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다. 지난해 1월쯤 결혼하고 4월 입사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꿈이 없어서 부모 바람대로 대학에서 약과를 졸업했다"며 "이후 고향에서 병원에 취업했지만 급여 등이 여의치 않아 한국계 기업인 현대알루미늄 인사팀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현지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베트남에서 선호하는 학과는 의약대, 법대 등으로 한국과 비슷하다. 특히 의대를 졸업하면 바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고 한화로 35만-40만 원 수준인 일반근로자 급여의 4-5배에 달하는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

유엔 씨 남편은 은행원으로 근무 중이어서 당장 생활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다. 이 젊은 부부는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짓고 가족들과 사는 게 꿈이다. 유엔 씨는 "땅은 얼마 전 사놓았고 앞으로 돈을 더 모으면 집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며 "2년 후 쯤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꿈 같은 미래가 베트남 모든 청년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진 않는다. 지난해 11월 현지 한 언론은 "젊은층이 호찌민에서 주택을 사려면 최소 20년 동안 저축해야 한다. 호찌민시 1인당 평균소득은 6300달러(월 525달러), 호찌민에서 가장 저렴한 주택가격은 15억동(6만 4500달러·한화 7600만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족의 재정적 지원 없이 젊은 사람이 첫 집을 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베트남의 현실을 전했다.

◇"베트남 발전을 믿는다"=29세 청년 떰(Tum) 씨의 표정에선 자신감이 넘쳤다. 현대알루미늄비나 생산파트 품질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는 떰은 "요즘 베트남 청년들은 시골보다 발전하는 도시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도 신도시 빈증으로 왔다"며 "베트남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건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 봄에 결혼을 앞두고 있어 어깨가 무겁고 책임감도 커진다. 앞으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며 공부도 병행해 나 자신과 가족, 회사의 발전을 함께 이루고 싶다"고 부연했다. 베트남 경제의 향후 전망을 묻자 떰은 "청년들이 베트남 경제의 핵심이다. 여기서 일하는 청년들을 포함해 젊은 사람들이 베트남 발전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전시와 자매도시 `빈증성`=현대알루미늄비나 공장이 있는 빈증(BInh Duong)성은 베트남 남부 호찌민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성은 한국의 도(道)와 비슷한 행정구역이다. 면적은 2695㎢로 서울의 4배 정도다. 2017년 기준 인구는 200만 명이며 2019년 3월 20일 현재 한국 기업의 빈증성 외국인직접투자(FDI) 투자액은 30억 3474만 달러(한화 3조 5300억 원·신고액 기준)에 달한다. 수도 하노이, 경제수도 호찌민 다음이다.

대전시와는 연이 깊다. 시는 2005년 빈증성과 자매결연을 맺고 경제·문화교류, 빈증성 공무원 파견 연수 등을 통해 상호 신뢰와 우애를 다져왔다. 2017년 시는 빈증성과 호찌민시에 각각 해외통상사무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2018년 10월 세계과학도시연합(WTA) 총회를 주재하고자 베트남을 찾았던 허태정 시장은 쩐 탄 리엠 빈증성장을 만나 양 지역의 우호관계를 재확인한 바 있다.

◇대전 기업이 완성한 베트남의 상징=대전과 빈증성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뗄 수 없는 관계다. 빈증성에 진출한 700여 개 한국기업 중 하나인 현대알루미늄비나는 대전에 본사를 둔 알루코(옛 동양강철) 그룹 계열사다. 투명한 유리나 반사유리로 된 빌딩 외벽 즉, 커튼월(curtain wall) 설계·시공을 주력으로 하며 2010년 세계 최대 알루미늄 원석 보유국인 베트남으로 전략적 진출을 택했다.

2016년 11월엔 베트남계 대기업 빈 그룹(Vingroup)이 발주한 `빈컴 랜드마크 81` 빌딩의 커튼월 외장공사를 수주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랜드마크81은 지하 3층, 지상 81층으로 높이 461.2m의 마천루다. 인도차이나반도 최고층 건물로 기록돼 있다. 선영복 현대알루미늄비나 법인장은 "베트남의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랜드마크81 빌딩을 우리 기술력으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항상 뿌듯함을 느낀다"며 "올해는 작년보다 9배가량 많은 270만개 규모의 TV프레임 제작을 수주해 증설을 준비하는 등 착실히 성장해 가고 있다"고 밝혔다.

◇"행복한 가정 꾸리고파"=빈증에 진출한 또 다른 한국기업 세림일렉트로닉스에서 만난 스물하나 후인(Huynh) 씨는 앳된 얼굴과 달리 손이 야무져 숙련된 직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 김창욱 법인장은 "각종 전자제품의 혈류라고 할 수 있는 전선 제조를 주력으로 하고 있어서 세심한 수작업이 필요한데 후인은 그에 딱 맞는 성실한 직원"이라고 치켜세웠다. 빈증과 4시간 거리 농촌마을에 부모가 살고 있다는 후인 씨는 시골에서는 급여가 적어 빈증으로 와 취업했다. 그는 "월급에서 최소한의 생활비를 빼고 전부 부모님한테 부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방인이 낯선 듯 시선을 내리깐 채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가지 못한 게 아쉽지만 여기서 일하는 건 대만족한다.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소박한 꿈을 말했다.

◇청년과 국가=한국기업에서 일하며 희망찬 미래를 그리고 있는 베트남의 청춘들을 만나고 호찌민으로 돌아가는 길. 오후 5시가 넘자 한적한 도로에 오토바이가 쏟아져 나오고 이들을 상대로 한 반짝시장이 거리에 아무렇게나 펼쳐진다. "후인 그 아이요… 정말 행복하면 좋겠어요." 서른을 앞둔 현지인 여성 통역이 차안에서 인터뷰 내내 참은 눈물을 삼킨다. 포장과 비포장이 교차하는 도로에서 퇴근길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뒤섞인다. 국가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그 과실이 이들 개개인으로 흘러 들어 풍요롭고 조화로운 성장에 다다를 수 있을지, 아니면 극심한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향한 분기점에 선 것인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베트남 청년 군중들의 모습 뒤로 뉘엿뉘엿 해가 기울고 있었다. 베트남 호찌민=문승현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