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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신춘문예] '아침의 동행' 단편소설 당선작 및 당선소감

2020-01-01기사 편집 2020-01-01 14:44:50     

대전일보 > 기획 >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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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동행] 한승주 作

나는 한 달 전부터 작업반장에게 일을 바꿔달라고 졸랐다. 총은 쏠만큼 쏘았으니 발골파트나 계류사로 보내달라고 끈질기게 매달렸다. 도축장에서 잔뼈가 굵은 오십대 후반의 최반장은 허, 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검지와 중지손가락 끝부분으로 머리를 긁었다. 허연 비듬이 작업복 어깨 위에 떨어졌다. 입을 벌린 채 비듬을 털어내는 반장의 금이빨이 반짝거렸다. 얼굴만 보면 영락없이 마음씨 좋은 동네아저씨였다.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부하직원들의 고충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직급이 높은 간부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훨씬 능숙했다. 입사할 때부터 도축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현장은 애당초 학력이 필요 없는 곳이었다. 채용공고에도 '학력무관'으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직원 대부분이 고졸 이상인 이곳에서 초등학교 중퇴인 그가 작업반장을 꿰찰 때는 나름의 처세술이 톡톡히 한몫을 했던 듯 했다.

내가 입사한 이래 현장파트는 인사이동이 없었다. 한번 맡은 일은 퇴직할 때까지 계속해야만 했다. 회사는 그 이유를 전문성으로 돌렸다. 인사이동은 사무직에만 국한되었다. 간부들은 도살, 해체, 발골을 전담하는 직원들이 근무하는 곳을 '생산부'라는 엄연한 부서명이 있음에도 '현장'이라고 불렀다. 회사는 도축장 중에서 비교적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도축장은 하루에 도살되는 가축이 천 단위를 훌쩍 넘겼다.

나는 하루에 백여 번 총을 쏘았다. 계류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가 도축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맨 먼저 맞닥뜨리는 킬러, 말하자면 나는 저승사자였다. 어떤 소는 체념한 듯 철문을 통과하기 전부터 그렁그렁 눈물을 내비치기도 했다. 소가 옴나위조차 불가능한 좁은 통로를 들어서면 그것은 막다른 길을 의미했다. 뒤로 물러서거나 도망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미 눈치 채고 있는 듯, 소는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킬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되도록이면 최대한 빨리, 긴 호스에 연결된 압축공기총을 소의 이마에 발사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소들은 꾸역꾸역 도축장 안으로 밀려들어와 얼굴을 내밀었고, 나는 표적지가 나타나면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잘 훈련된 특수부대원처럼 총을 쏘았다. 벌써 15년이 흘렀다.



첫 출근 다음다음날이었다. 인사부장이 이틀간의 현장교육을 끝낸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각 부서를 돌았다. 형식적인 상견례였다. 마지막으로 들른 부서는 경리과였다. 과장 한명과 두 명의 여직원이 회사전체의 매출과 회계를 맡고 있었다. 그곳에 한 여자가 있었다. 송경희. 주변머리가 없는 나와는 달리 성격이 쾌활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살갑게 굴었다. 여상을 졸업한 입사 4년차인 미스 송은 턱이 갸름하고 목에서부터 어깨로 떨어지는 선이 고왔다.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혼자 살다가 총각귀신이 될 것 같았다. 처음으로 용기를 냈다. 휴대폰이 귀한 시절이라 매일 편지를 썼다. 3년 만에 경희는 마음을 열었고 결혼 7년 만에 얻은 쌍둥이 딸은 삶의 전부였다. 행복했다.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았다. 행복했으므로 소의 정수리에 총알을 박아 넣으면서도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이듬해 쌍둥이를 대신 키워주던 장모가 골절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아내는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한동안 육아에만 전념하다가 무역회사 경리부에 다시 취직했다. 쪼들렸던 경제에 다소 숨통이 트였다. 중고이기는 해도 소형자동차 하나를 구입해서 여름휴가 때는 피부가 시꺼멓게 타들어갈 정도로 바닷가를 돌아다녔다. 뜨거운 백사장에서 너무 오래 뒹굴다가 팔다리에 화상을 입어 병원에 다닌 적도 있었다. 허물이 벗겨질 때마다 고단했던 과거가 한 꺼풀씩 사라지는 것 같아 오히려 흐뭇했다. 쌍둥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무렵엔 은행대출을 얻어 재개발이 예정된 변두리에 15평대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었다.



총에 맞았다고 소가 곧바로 숨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축용 피스톨을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면 강철봉이 뇌 조직을 파괴하여 순간적으로 기절할 뿐이다. 심폐기능은 여전히 살아있는 일종의 가사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총알이 뇌 중심을 비켜간 어떤 소는 피를 철철 흘리며 벌떡 일어서기도 한다. 그런 돌발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나는 흔들리는 의자에 못을 하나 더 박듯, 뻥 뚫린 이마 옆을 겨냥해 다시 총을 쏜다. 완벽하게 숨통을 끊지 않는다는 것은 잔인한 고문을 즐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자비란 고통을 최대한 빨리 멈추게 해주는 것뿐이다. 소가 기절하면 두꺼운 비닐 옷으로 완전무장한 직원이 강철와이어를 머릿속으로 집어넣어 연수를 부숴버린다. 뇌신경을 파괴시킴으로써 더 이상 버둥거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때까지도 소는 죽지 않는다. 죽음에 이르는 공정이 하나 더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끝까지 버티고 있는 걸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것까진 여전히 알지 못한다. 반장은 그 마지막 작업을 방혈이라고 했다. 겁에 잔뜩 질려있는 우리가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리며 고기의 신선도와 상품성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정임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그것은 쓰러진 소의 한쪽 다리를 샤클체인으로 감은 뒤 방혈컨베이어에 거꾸로 매달아 신속하게 피를 뽑아내는 일로, 이때 소는 비로소 죽음에 이른다.



- 여보, 여보.

아내가 내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가까스로 떴을 땐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총을 쏘느라 이불을 펴자마자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무릎을 턱을 괸 채 웅크리고 있었다. 포식자를 만나 몸을 둥글게 말아 넣은 한 마리 아르마딜로처럼 보였다.

- 왜 무슨 일이야?

내가 이불 속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며 물었다.

"………."

아내의 등을 흔들며 다시 물었다.

- 아파?

- 응.

그녀의 얼굴이 무릎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스탠드의 미등을 끄고 전등 스위치를 켰다.

- 어디?

- 배, 배가.

- 많이 아파? 언제부터 그랬어?

두 손으로 배를 움켜 쥔 아내의 상체가 침대 모서리 쪽으로 기울어졌다. 찌푸린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 과식했나 보네. 소화제 갖다 줄게.

약상자를 가져오기 위해 일어나는데 아내가 붙잡았다.

- 그냥 있어. 그런 게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급기야 떼굴떼굴 구르기 시작했다. 참을성이 강한 여자였다. 웬만큼 아파도 내색은커녕 병원에도 잘 가지 않았고,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쌍둥이를 낳았던 여자였다. 산부인과 의사 20년에 이런 산모는 처음이라고, 집도한 의사가 혀를 내둘렀다. 그런 여자였는데,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곤히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울 정도라면 정말 많이 아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맹장인가?

-아냐, 처녀 때 맹장 떼 냈어.

아내가 등을 돌린 채 말했다. 무릎을 가슴팍까지 바짝 끌어올린 자세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근데 뭔가 좀 이상했다. 아내가 아닌, 마치 다른 여자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제법 볼륨감이 있는 몸매였는데 지금 그녀의 뒷모습은 밋밋하기 짝이 없었다. 굴곡은 온 데 간 데 없고 대신 각진 어깨뼈가 잠옷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언뜻 봐도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이 아파트를 장만하기까지 꼬박 7년이 걸렸다. 그동안 아내는 알뜰하게 살았다. 무역회사로 옮긴 뒤 수출물량이 많을 땐 납기일을 맞추느라 퇴근이 늦어지기 일쑤였지만, 살림솜씨가 야무져 집안 구석구석은 먼지 한 톨 찾을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그녀의 손을 거친 세간들은 늘 윤기가 반짝거렸다. 서랍 안 속옷들은 방금 구입한 새것처럼 늘 뽀송뽀송하게 개져 있었다. 붙임성이 있어 시댁식구들과 사이가 좋았다. 여동생 결혼 땐 눈치를 주지 않았는데도 제 발로 혼수품을 떠맡겠다고 나선 착한 여자였다. 그런 아내를 지켜볼 때마다 나는 기꺼이 총을 쏘았다. 가끔씩 멈칫거리던 엄지손가락에 힘을 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안되겠다. 병원에 가보자.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한참동안 망설이던 아내가 말없이 따라나섰다. 배탈이 단단히 난 게 틀림없었다. 집을 나서며 아이들 방문을 열어보았다. 쌍둥이는 새로 장만한 이층침대 안에서 곰돌이 인형을 끌어안고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



-일단 피검사부터 할 게요

두 시간쯤 뒤에 여의사가 검사결과를 설명했다. 각종 수치가 빽빽하게 적힌 파일을 들여다보며 급성 위경련인 것 같으니 며칠간 약을 복용하면 좋아질 거라고 했다. 굳어있던 아내의 얼굴이 밝아졌다. 몸을 일으키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선생님, 체중이 많이 빠졌어요. 구역질도 나고요." 했다. 여의사는 "그래요? 약 먹어보고 안 되면 외래로 오세요." 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병원 문을 나선 것 뿐 인데도 한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매서운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아내의 통증이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새벽의 불안했던 마음은 어느 정도 가셨다. 요 며칠 새 야근을 한데다 종일 끼니까지 걸렀으니 위에 탈이 날만 했다.

- 밥은 꼬박꼬박 챙겨먹어야지!

내뱉고 보니 속마음과는 달리 나무라는 말투가 되어버렸다.

- 불치병이 아니라서 좀 서운했지? 화장실에서 낄낄거릴 기회가 날아가 버려서.

아내가 손을 잡으며 처음으로 배시시 웃었다.

- 못되게 군다.

나는 아내의 머리통을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농담을 하는 것으로 봐서 살만해진 것 같았다. 표정이 밝아 보였다. 우리는 병원 본관 앞의 택시정류장을 향해 나란히 걸었다. 맑고 쾌청한 날씨였다. 아침햇살이 정맥이 파랗게 도드라진 아내의 관자놀이 위로 퍼져나갔다.



출근하자마자 나는 반장을 찾았다. 지난번 반장의 태도를 보고는 부서이동은 힘들겠다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 새벽 아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면서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15여 년 동안 잘 해온 일인데 요즘 갑자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총 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 반장님, 이제 지쳤단 말입니다!

내심 퇴사까지 마음먹고 있는 터라 내 말은 좀 거칠게 나왔다.

- 회사규칙을 잘 알면서 그러네.

하지만 반장은 지난번보다 오히려 더 심드렁하게 내 말을 받았다. 그는 아까부터 고개를 숙인 채 콩나물국을 연거푸 떠먹었다. 파리들이 계속해서 제육볶음 위에 내려앉았다. 반장이 손을 휘저어 쫓아냈지만 그때뿐이었다. 피 냄새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전 작업 후 몸에 배인 냄새를 대충 씻어내도 수십 마리의 소에서 뿜어져 나온 뜨끈한 피의 흔적을 샤워 한번으로 완전히 지우기란 불가능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추어도 도축현장은 늘 피범벅이었다. 소의 경동맥을 따는 방혈장 바닥은 상수관이 터진 도로처럼 피가 흥건하게 고일 수밖에 없었다. 도축해야 할 마릿수가 많을 때는 직원들의 장화콧등까지 핏물이 찰랑거렸다. 이곳 파리들은 집요했다. 작업모로 고등어조림 위에 달라붙어있는 파리를 내려쳐도 어묵볶음 위에 앉아있는 파리들은 좀처럼 도망가지 않았다. 마치 얼룩말 한 마리가 사자에게 찢기고 있을 동안 그 옆에서 태연하게 풀을 뜯고 있는 다른 얼룩말 무리처럼.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회사의 규정을 어떻게 어기겠나?

반장은 숟가락을 탁,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내려놓으며 퇴사를 들먹이기까지 했다.

-그만 두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더 이상 반장의 비위를 거스르기 싫어 입을 다물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초겨울비가 며칠째 계속 내렸다. 아내는 의사의 지시대로 꼬박꼬박 약을 복용했다. 간간이 배를 움켜쥐긴 했지만 그날 밤처럼 심한 통증은 아닌 듯 했다. 나는 조만간 한방에 들러 보약을 한 첩 짓기로 마음먹었다. 직장과 살림을 병행한다는 것이 아내에게 벅차보였다. 수수깡처럼 몸이 비쩍 말라있었다. 응급실에 다녀온 뒤 찬찬히 살펴보니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많이 여위었을 뿐 아니라 특히 얼굴빛이 맑지 않았다. 눈에 띄게 탄력이 사라진 피부며 머리숱도 많이 빠져 있었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어딘지 모르게 탁해보였고, 눈 흰자위 부분이 황달에 걸린 것처럼 누렇게 변해 있었다.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보약을 짓기 전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반장의 눈치를 보며 회사에는 이틀간 휴가를 냈다. 괜찮다고 고집을 부리는 아내를 설득해 예약을 했고, 다음 날 아내는 병원에 가는 택시 안에서 내내 투덜거렸다. 아내가 다니는 무역회사의 몸집이 커지면서 영업활동에 따른 각종 경비가 자연히 증가했다. 경리부도 덩달아 일손이 바빠질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 조직검사를 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검사결과가 나오는 금요일 오후, 컴퓨터 모니터에서 CT영상을 훑어보던 의사가 미간을 찌푸린 채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내는 다음날 오후에 췌장조직 일부를 뗐고, 결과일까지는 닷새가 남아있었다.

나흘이 더디게 지나갔다. 출근길이었다. 알몸의 플라타너스 가지들이 가볍게 흔들렸다. 통근버스 차창에는 검은 색 구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만큼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총을 쏘면 화르르 까마귀 떼처럼 공중으로 흩어질 것 같았다. 나는 아까부터 어깨를 짓누르는 총무과 김대리의 바윗돌만한 머리통을 밀어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김 대리가 툭툭 어깨를 쳤다.

- 아침부터 무슨 잠꼬대를 그렇게 심하게 해요?



*



진료실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스무 명을 넘었다. 예약시간에 맞춰왔는데도 2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간호사가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아내가 먼저 들어가고 내가 뒤를 따랐다.

의사는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옆에 앉자 그가 모니터를 우리 쪽으로 비스듬히 돌렸다.

- 췌장암입니다.

의사가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검은색, 회색, 흰색이 복잡하게 뒤엉킨 복부장기들 사이에 끼어있는 세모난 덩어리 하나를 가리키며 무심하게 말했다. 위성으로 찍은 달 표면처럼 회색바탕에 희끗희끗한 점들이 섞여있었고, 미끈한 다른 장기들에 비해 표면이 울퉁불퉁해 보였다.

- 저게 종괴입니다. 쉽게 말해서 암 덩어리에요. 크기로 보아 이미 4기로 접어든 상태네요.

나는 소의 이마에 발사해야 할 압축공기총을 내 머리에 대고 쏘아버린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누가 차단기를 내린 것처럼 한순간 진료실 안이 깜깜해졌다. 힐끗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눈을 밑으로 내리깐 채 그냥 제 발등을 무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의사는 그녀의 무표정이 불편했는지 나에게 췌장암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수술하면 나을 수 있나요?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암이 간과 위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일종의 예비사망선고였다. 아내가 혼자 진료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의사는 조금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내를 불러 세우려는 내게 췌장암의 치료와 생존기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항암치료를 하면 어느 정도의 생명연장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나는 한쪽 나사가 달아나버린 의자처럼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진료실 맞은 편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채 앉아 있었다. 창밖 오동나무 가지들이 시야를 반쯤 가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 가려있던 붉은 벽돌로 마감된 병동건물이 우중충하게 드러났다. 늦은 오후의 햇빛에 반사된 아내의 낯빛은 오전보다 더 누르스름하게 보였다. 나는 고개가 점점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아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 치료받자.

내 눈을 피하며 아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 나 어느 정도 알고 있었어.

내 앞에선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몸으로 옮겨간 충격까지는 어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입원한 다음날 저녁부터 아내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었다. 장모의 말에 의하면 오전엔 그럭저럭 견디는데 오후부터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다는 거였다. 일주일이 지나자 황달이 그녀의 온몸을 치자빛깔로 물들였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방광에 호스를 끼웠다. 복수가 차올라 몸을 뒤척거리기도 힘들어 했다. 아내는 전혀 딴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소한 일에 쉽게 짜증을 내고 때론 식사도 거부하며 몇 시간씩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주치의의 말에 의하면 말기암환자들이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어쨌든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12사이클 동안 항암주사를 맞기로 했다. 아내는 항암치료가 시작된 첫날부터 식사는 물론이고 물조차 넘기려 하지 않았다. 물기가 바싹 말라버린 손으로 시트를 움켜쥔 채 멀건 위액만 게워냈다. 유난히 깔끔을 떨던 여자였는데 주사를 맞은 다음날부터는 떡이 질 때까지 머리를 감지 않았고 양치조차 며칠씩 건너뛰었다.

- 쌍둥이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3차 항암치료가 끝난 날 저녁, 아내가 별안간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만난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눈에 자꾸 밟히는 모양이었다. 입원한 이후 아이들이 다녀가고 나면 별안간 샤워를 하고 싶다고 한 적이 많았다. 오늘도 그랬다. 생에 대한 강한 의지처럼 느껴져 나는 아내의 몸 구석구석을 정성스럽게 씻겼다. 체중은 이미 40킬로그램을 경계로 오르락내리락 했다. 엉덩이는 뾰족한 삼각형으로 변해있었고, 앙상하게 드러난 쇄골과 어깨뼈들은 만지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지방이 말라붙은 젖무덤은 공기가 빠져나간 진공 팩처럼 쭈글쭈글했다. 나는 수건을 몇 개나 바꾸어가며 조심스럽게 아내의 몸을 닦았다. 팔을 조금만 움켜쥐어도 아프다고 울먹거렸다.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하루 종일 총을 쏘았다. 앞 소가 쓰러지면 다음 소가 고개를 내밀었고, 나는 기계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잘 숙련된 검표원처럼 소들의 편편한 이마에 '편도'라고 양각된 붉은 도장을 팍팍 찍었다. 나는 이따금 눈앞을 날아다니는 파리에 시선을 빼앗기면서도 정확하게 한 마리씩 쓰러뜨렸다.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소 한 마리가 총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방금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멍한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 볼 뿐, 뒤로 꽈당 쓰러지거나 심지어 주저앉지도 않았다 소는 한참동안 비틀거리며 작업장을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소는 두발의 총알을 연거푸 맞고서야 무릎을 꿇었는데, 그때까지도 완전히 널브러지지 않았다. 결국 직원들이 달려들어 작업용 칼날로 경동맥을 찔렀고, 소는 폭포수 같은 피를 두 양동이나 뿜어내고서야 조용해졌다.



퇴근 후 병실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진통제를 맞고 잠들어 있었다. 모처럼 얼굴이 편안하게 보였다. 눈 주위가 조금씩 화끈거리더니 이내 뜨뜻해졌고 나도 모르게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마중물을 빨아들인 펌프처럼,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동안 고여 있던 눈물샘을 바닥까지 완전히 퍼내기로 작정한 듯 멈추지 않았다.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와 간호사에게 담당의사의 진료일을 물었다. 간호사는 마침 의사가 야간근무중이라 당직실로 가면 만날 수 있다고 친절하게 귀띔해 주었다. 내가 당직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의사가 부스스 자세를 바로 잡았다.

- 선생님, 지금 집사람 상태가 좀 어떻습니까?

질문을 던져놓고 금세 후회했다. 내가 의사보다 아내의 상태를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콩팥이 망가졌고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어요. 언제 합병증이 올지도 모릅니다. 전이속도가 너무 빨라 항암주사가 따라잡기 힘든 상태예요.



설을 앞두고 도축해야 할 소들이 몇 배로 밀려들었다. 9시가 넘어서야 작업이 끝났다. 간단한 샤워 후 얼굴을 닦고 있는데 처남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핸드폰 화면에 떠있는 큰 처남이란 글자를 내려다보며 한참동안 통화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갑자기 며칠 전 의사가 내뱉었던 단어 하나가 일체의 다른 생각들을 밀어내며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혼수상태에 빠졌다.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큰 처남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들릴락 말락 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장모의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거실을 뛰어다니는 윗집 아이들의 발소리 같은, 빠르고 연속적인 박동소리가 귀에까지 쿵쿵 울렸다. 수건을 쥐고 있는 손이 벌벌 떨렸다. 나는 오 분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었다. 아무런 행동도,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헤어드라이어가 마구 헝클어놓은 머리칼을 빗거나 물기가 바싹 말라버린 얼굴에 로션을 바를 수조차 없었다. 그냥 그대로 샤워장을 나와 운동화 끈을 매려고 허리를 구부렸다 목과 점퍼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서 찬바람이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동치던 심장박동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고, 그제야 문득 아내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젯밤 9시경이었다. 아내가 조근거리는 음성으로 말을 걸었다.

- 태수씨, 나 고백할 게 있어.

- 고백?……. 괜히 겁나네.

9시 뉴스에서 눈을 뗀 내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 내 첫사랑은 당신이 아니었어.

- 뜬금없긴.

처남으로부터 아내의 첫사랑에 얽힌 내막을 대충 들은 적이 있어 아내의 말에 별 흥미가 없었다.

- 당신 만나기 한참 전 일이긴 한데, 근데 당신을 만난 뒤론 그 사람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믿어줄 거지?

- 그럼, 믿고말고. 당신에 관한 한 다 믿을 수 있어.

나는 아내의 통증이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 당신은 내 인생 최고의 남자였어.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는 아내가 의아했지만 오랜만에 오글거리는 대화라 설레는 기분마저 들었다.

- 그걸 이제 알았어?

- 당신 만나기 전엔 많이 힘들었거든.

- 엄청 좋아했나 보네.

- 그땐…….

엄지손가락으로 소매 끝을 문질러대던 아내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 태수씨, 나 사랑해?"

- 응?

- 날 사랑하냐구?

- 바보야, 그걸 말이라고 해?

- 얼마큼?

-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내 목숨의 천배쯤.

- 정말? 진짜지?

- 그럼, 윤씨 가문의 명예를 걸고 맹세해.

내 표정이 너무 진지해 보였는지 아내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해맑은 웃음소리였다.

- 그럼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사랑해 줄래?

아내가 갑자기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물었다.

- 지금도 사랑하고 있잖아. 섭섭하네. 마치 내가 사랑 안 해주는 것처럼.

- 그런 사랑 말고, 음……,이번엔 조금 차가운 사랑.

- 차가운 사랑? 하하, 지금 말장난 하는 거지?

난 웃었다. 웃으면서도 이 상황에서 왜 뜬금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는지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침상 밑에서 뿌연 저녁안개 같은 것이 매트리스 위로 올라와 아내의 몸뚱어리가 공중에 붕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애써 과장된 웃음소리로 안개를 흩어지게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 아니, 나 지금 진심이야.

경희의 표정은 정말 진지했다. 어금니까지 꽉 깨물고 있어 움푹 팬 볼 바깥으로 턱뼈가 불거져 나와 있었다.



아까부터 나는 귀 안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귓속으로 들어간 날벌레가 빠져나오려 애쓰는 소리 같았다가, 차츰 짐승들이 한꺼번에 울부짖는 울음처럼 웅웅거리는 소리로 변했다. 귀를 후벼 팠지만 소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던 경희가 말을 이었다.

- 한 번도 내 뜻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어.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상 취직을 했어. 첫사랑은 자기를 놓아달라고 울었어. 난 그 사람의 소원대로 놓아주었어. 놓아주지 않으면 옥상에서 뛰어내릴 것 같아서.

아내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 마지막으로 내 뜻대로 해보고 싶어. 당신은 날 많이 사랑한다고 맹세했으니, 내 말대로 해줄 거지?

내가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자 아내가 음성을 높였다. 맞은편 침상의 노인이 몸을 뒤척거렸다.

- 태수씨, 사랑한다면 이제 그만 놔줘. 제발.

아내의 목소리는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노인 침상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간병인이 고개를 들었다.

- 힘들고 고통스러운 거 알아. 그래도 약한 마음먹지 마. 쌍둥이가 있잖아.

나는 여전히 아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많이 힘들구나,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쌍둥이라는 말에 갑자기 아내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하얗게 말라붙은 입술을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 우리 벨기에 갈까?

말을 던져놓고 마치 벨기에가 가까이 있는 듯 어둠이 짙게 깔린 창문을 바라보며 힘없이 웃었다.

- 벨기에? 거긴 왜?

- 그 나라는 선택할 수 있대.

- 당신 설마!

그제야 아내가 지금껏 무슨 말을 빙빙 둘러서 하고 있었는지 눈치를 챘다. 나는 얼마 전 티브이에서 안락사에 관한 외국 다큐프로를 본 적이 있어서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설마 이런 생각까지 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아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근데 그건 좀 그렇다. 갈 땐 둘이 갔다가 올 땐 당신 혼자 와야 하잖아.

- 경희야!

- 함께 온다 해도 난 수화물 칸에 따로 있어야 되고.



*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 처남과 장모의 울음소리. 차가 관악플라워라고 쓰인 꽃집 앞을 지날 때 아내와 나누었던 어젯밤의 대화들이 반복적으로 되살아났다. 오늘은 아내의 37번째 생일이었다. 나는 결혼 후 단 한 차례도 그녀의 생일을 까먹은 적이 없었다. 처남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이번 생일선물로 무엇이 좋을까, 속으로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늦은 생일은 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올해는 특별한 경우라 나는 아내가 의식을 회복하는 대로 여태까지 받아온 그 어떤 선물보다 훨씬 더 근사한 것으로 해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중환자실로 옮긴지 세 달이 지났다. 혼수상태에서도 아내는 한 번씩 꿈틀거렸다 목에 튜브를 꽂은 채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아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한번, 그것도 퇴근 후 저녁면회시간 30분이 유일했다.

나는 매일 총을 쏘았다. 그리고 반장에게 부탁한 보직변경은 끝내 거절되었다. 그저께 반장은 나를 불러 세우더니 회사방침에는 변동이 없다고 싸늘하게 말했다. 덕분에 나는 하루에 백여 발의 총을 계속 쏘아야 했다. 도축의 풍경도 변함이 없었다. 소들이 쓰러지면 쇠갈고리가 오른쪽 뒷다리를 공중으로 잽싸게 낚아챘고, 방혈담당이 작업용 칼로 경동맥을 찌르면 피가 바닥으로 콸콸 쏟아졌다. 작업장은 여전히 역한 피 냄새로 진동했으며, 겨울인데도 파리 떼가 들끓었다. 내가 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마 한가운데 정확하게 총알을 박아 넣어 순식간에 소를 기절시키는 것이 내가 가진 권력의 전부였다.



4월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중환자실 건물로 연결되는 언덕길 양편에는 백목련들이 심어져 있었다. 저녁이면 바람에 떨어진 목련꽃들이 수의처럼 도로를 하얗게 뒤덮었다. 우려하던 합병증이 찾아온 것은 목련이 다 떨어진 4월 중순이었다. 아내의 폐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요로감염으로 시뻘건 오줌을 쏟아냈다. 여전히 의식은 없었다. 아내는 가스 불에 덴 흉터 때문에 한여름에도 긴팔 블라우스를 입고 다닐 만큼 자존심이 센 여자였다. 그런 아내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축복이었다. 의식을 잃기 전날 밤, 아내의 애원은 진짜 속마음이었을까. 안락사를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들은 단 한번이라도 고통에 일그러져 괴물처럼 변해버린 아내의 얼굴을 본 적이 있을까. 보았다고 치자. 그들은 목에 인공호흡기를 삽관한 채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저 여자가, 질소를 가득 채운 풍선처럼 공중으로 떠오르지 않기 위해 35킬로그램도 안 되는 중력과 욕창의 끈적거리는 고름으로 악착같이 침상에 달라붙어있는 저 여자가, 바지런한 유림아파트 쌍둥이엄마, 대동무역 강계장, 골안마을 윤씨네 맏며느리, 그리고 내 첫사랑 강경희 바로 그 여자라면, 믿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나는 울다가 웃었고 웃다가 다시 울었다. 근무 중 절대 마셔서는 안 될 술을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고 어떨 땐 술이 덜 깬 상태로 총을 쏘았다. 그리고 지난주에 마침내 담당의사에게 더듬더듬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고 말한 뒤 대답도 듣지 않고 진료실을 나와 버렸다. 며칠 후에 만난 의사는 난색을 표했다. 몇 차례의 회의를 거친 결과 요구는 거부되었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내가 의식을 잃기 전날 밤 분명하게 의사를 표시했다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환자본인이 '사전연명치료계획서'를 작성해 치료거부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면 최소한 가족전원이 합의해야만 가능하다고 말하며 의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연명치료거부에 대한 사전동의서를 받아놓지도 않았고 장모가 극력하게 반대했으므로 나는 의사가 요구하는 그 어떤 서류도 제출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칭얼거리는 쌍둥이를 재우고 소주를 마셨다. 혼곤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가 눈을 뜨니 아침 7시였다. 평소보다 30분쯤 일찍 집을 나섰다. 난생처음 작업복이 아닌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택시를 기다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푸른빛이었다. 신호가 바뀌자 정지선 앞에 서있던 차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끈적한 햇빛이 욕창처럼 차창에 달라붙었다. 햇빛은 반쯤 열려진 창문 틈으로 흘러내려 바지 위에 질펀하게 쏟아졌다. 나는 여러 번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사타구니에 달라붙은 바지를 손으로 집어 올렸다. 오랜만에 입는 양복이라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결혼 후 체중이 늘어난 탓에 바지가 꽉 낀데다 아까부터 뾰족한 것이 허벅지를 찔렀다. 아침에 옷을 갈아입다가 양복바지로 옮겨놓은 커트 칼 때문이었다. 깎아도 계속 돋아나는 집게손가락 티눈을 제거하기 위해 늘 갖고 다니는, 날 길이가 절반쯤 남은 문구용 칼이었다. 손가락 티눈은 우리 같은 총잡이들에게 흔히 생기는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바지에 손을 넣어 칼 위치를 바꾸었지만 칼은 계속해서 사타구니 사이에서 걸리적거렸다.

- 기사 아저씨, 차 좀 돌려주세요.

- 예?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내 눈을 쳐다보았다. 네 개의 눈이 잠시 부딪혔다.

- 경기병원으로 가주세요. 죄송하지만 급한 일이 생겨서요.

기사가 다음 신호에서 신경질적으로 불법유턴을 하더니 가속페달을 밟았다. 사이드미러 속에 사원들을 태우기 위해 시내 쪽으로 달리고 있는 통근버스가 조그맣게 보였다.

병원에 도착하니 8시였다. 중환자실 출입문에 붙어있는 벨을 눌렀다. 한참 뒤 간호사가 나왔다. 그녀는 "아직 면회 시간이 아닌데요." 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내의 고향후배인 윤간호사였다. 나는 어제 저녁면회 때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고 둘러댔다. 간호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휴대폰만 가져가세요, 면회는 안 돼요. 라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대지를 뚫고 올라온 싱싱한 봄풀을 뜯으며 기쁨에 겨워 내지르는 울음 같기도 하고, 말벌에 귀가 쏘여 내지르는 비명 같기도 했다. 소들의 울음소리는 비슷비슷했다. 수백 마리의 소들이 한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한번 합쳐진 울음은 맥놀이로 퍼져나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도축장에서 나와 맞닥뜨린 소들은 대부분 크게 한번 울음을 내질렀다. 그러나 어떤 소들은 끝까지 울음소리를 내진 않았다. 그런 소들은 울음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울지 않는 소들에게 되도록이면 빨리 총을 쏘았는데, 그때서야 소는 콘트라베이스 같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낮고 어두운 음역대의 울음을 길게 터뜨린 뒤 울음을 끝냈다.



멀리 경희가 보였다. 어린아이처럼 새근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12년 전 늦가을, 아침햇살처럼 환한 그녀의 웃음과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가슴이 쿵쾅거리며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인공호흡기가 경희의 목 안에 강제적으로 산소를 밀어 넣고 있었다. 나는 바지주머니 속의 커터 칼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엄지손가락 끝으로 칼날을 칼집 밖으로 내밀었다가 제자리에 다시 집어넣곤 했다.

나는 허리를 굽혀 아내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딱딱하고 차가울 거라 예상했는데, 놀랍게도 경희의 입술은 매우 부드러웠고 따스하기까지 했다. 마치 회사건물 뒤 어두컴컴한 담벼락에서 우리가 처음 나누었던 첫 키스처럼, 아내는 달달한 입 냄새까지 풍겼다. 나는 경희의 머리칼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가지런하게 한쪽으로 빗겨주었다.

내가 몸을 일으켰을 때 잠시 그쳤던 소들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소들은 제각각 다른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그것은 내 심장박동소리와 합쳐져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울음소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멀리 윤간호사가 수액이 매달린 카트를 끌며 걸어왔다. 바지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오른손이 자꾸만 저렸고, 나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를 흘려들으며 바지호주머니 속 커트 칼을 움켜진 손을 만지작거렸다. 윤간호사가 아내의 침상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아내는 아침이 늦은 선물처럼 펼쳐놓은 창가의 햇빛을 뒤집어쓴 채, 그 자세 그대로 누워있었다. <끝>





#당선소감

한승주


먼저 주님의 크나큰 능력에 감사드립니다!

저 같은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하여금 주님의 은혜를 증거하도록 하시기 위해 이 나이에 소설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고,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엄청난 선물까지 안겨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실 당선의 기쁨만큼이나 원인모를 미안함과 쑥스러움이 몰려왔고 저어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엄살을 떨자면 최근 들어 급격한 노안이 와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습니다. 돋보기 도수를 높일 때마다 모니터 속의 글자들은 맑음 후 흐림의 기상도를 만들어 냈습니다. 때로는 폭풍주의보의 바다처럼 화면에 풍랑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모세의 믿음처럼 모니터의 홍해바다 속으로 걸어갈 수 밖 에요.....

40년의 결혼생활 동안 묵묵히 참고 인내해준 아내에게 지면을 빌려 그 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고마움의 말을 전합니다. 장모님은 새해에 85세가 됩니다. 앞으로 15년은 건강하게 더 사시기를 사위가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두 명의 자녀와 사위에게도 아버지와 장인으로서 고마움을 전합니다. 경자년 쥐띠 해인 올해 저는 우리나라 나이로 64세가 됩니다. 스스로 한 가지 각오를 다짐해 봅니다. 단편소설을 한 편씩 탈고할 때마다 한 달씩 작가로서의 나이를 거꾸로 먹겠습니다. 이것만이 소설적 상상력의 동맥경화를 막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또 이러한 자세만이 저를 뽑아준 심사위원님들과 대전일보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각오를 다지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창밖이 어두워졌습니다. 담벼락 아래 모여 있는 상상력의 그림자들이 깨금발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아우성들입니다. 두 팔을 펼쳐 그것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오늘은 그들과 노숙을 할 작정입니다,

대전일보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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