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의 숨바꼭질] 최일걸 作

코를 우두커니 세워둔 채

눈은 짐짓 딴 데를 보고 있지만

입은 털어놓고 싶어 간질간질 해

내 얼굴에서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다는 거,

숨죽이고 숨어 있다가도

불쑥불쑥 엄마 아빠가 튀어나온다는 거,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해

웃는 모습은 영락없이 엄마이지만

그때마다 치켜 올라가는 눈꼬리는

아빠에게 가 닿아 있어

조그만 내 얼굴 속에서 아빠 엄마와 내가

하루 종일 숨바꼭질을 하는 거야

가끔은 형이 뛰어 들어 오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어서시기도 하고

고모나 삼촌이 끼어들기도 해

찾았다 싶으면 꼬리를 감추고

꼬리를 감췄다 싶으면 모습을 드러내는

내 얼굴의 숨바꼭질

#당선소감

저는 어머니의 글씨체를 뒤집어쓰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밤도 손에서 펜을 놓지 못하고 불면의 벽에 또박또박 글을 쓰시는 여든 노모, 여든에 이르서야 비로소 어머니는 시집과 수필집을 출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학창시절에 꿈꾸었던 작가의 길에 드디어 들어서신 겁니다. 더듬더듬,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시는 어머니에게 있어 문법 체계는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을까요. 어머니가 하얗게 밝히는 밤은 백지 공포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행간이 덜컥덜컥 어머니를 붙들고 놔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막아서는 장벽 하나 하나를 극복했습니다. 고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희망을 낳았습니다. 어머니는 희망의 불씨 하나를 키워 걷잡을 수 없는 열정으로 끌어 올리셨습니다. 더는 그 무엇도 어머니의 창작을 막아서지 못했습니다. 깊은 밤, 어머니는 밤하늘의 별자리들을 한데로 그러모아 지상에 풀어놓습니다. 어머니가 귀감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저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제 생의 지각 변동이 감지되었습니다. 진앙지는 바로 대전이었습니다. 신춘문예 동시 부문 당선 통보 앞에서 저는 밑바닥 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영광스런 상이 주어지다니. 결코 부끄럽지 않게 하루하루 살아가야겠다, 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대전일보 신춘문예 수상자로서 열심히 글을 쓰는 게 보답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내게 큰 상을 주신 대전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의 창작의 산실이 되어주신 부모님과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귀한 지면을 빌려 나의 아들, 진후와 건후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아무래도 여진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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