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신뢰 중요

서미경 대전 대청병원 간호부장
서미경 대전 대청병원 간호부장
`죄송하지만 차비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주말을 맞아 가족모임 참석을 위해 원주행 시외버스를 기다리던 중, 40대 초반의 낯선 여성이 다가와 말을 붙였다.

`아니, 언제 봤다고 돈을 빌려달라지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나?` 그러나 내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그 여자분은 다시 한번 자기 사정 얘기를 했다.

자기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주면서 `제가, 급히 친정을 가야 하는데, 차비가 부족해서 부탁드리게 됐습니다. 돈은 계좌번호로 꼭 보내드리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정했다.

터미널 같은 곳에서 차비 보태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터라 신뢰가 가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간절히 부탁해서 얼마나 필요한지 물었다. 그러자 `3만 원만 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라고 답이 돌아왔다.

마침 원주행 시외버스도 도착해서 3만 원과 계좌번호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이틀 후에 꼭 보내드릴게요` 라고 인사하는 여자를 뒤로 한 채 버스에 올랐다. 그래, 그냥 3만 원 적선한 셈 치자. 보내긴 뭘 보내겠어. 그렇게 그 일을 잊고 월요일에 병원 출근 후 일을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 한통이 왔다.

메시지에는 `지난 토요일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3만 원과 음료수 드시라고 2000원 더 보냈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아직 우리 사회는 믿을만 하다고 생각하며 잠시 의심했던 나 자신이 쑥스러웠다.

병원에서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접한다. 환자와 가족, 직장 동료, 그 외 주변인들까지. 그 중에서도 환자와 그 가족과의 만남은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친절하며 따뜻하게 대해 주는 분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있다.

더구나 불만 사항을 부풀려 문제 삼는 분들도 있다 보니 현장 간호사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진통제가 안 듣는 것 같다며 다시 놔달라는 경우나, 왜 빨리 진료해 주지 않느냐며 병원장을 찾는 환자, 주사를 잘못 놓은 것 같다며 소리치는 환자 등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경우까지 겪다 보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쉽지 않다.

하루는 외과 병동을 라운딩하고 있는데, 70대 중반의 할머니 한 분이 병동 간호스테이션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병동 간호사들은 할머니께 눈길조차 보낼 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하실 말씀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말 없이 돌아서 그냥 병실로 향했다. 이상한 생각에 병동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저 할머니 그냥 왔다 갔다 하셔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라고 했다.

일주일 후, 또 외과병동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할머니를 만났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든지 직접 이유를 듣고 싶었다. 할머니 앞을 가로막고 서서 `할머니,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세요`라고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할머니께서 작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할머니는 바쁘게 일하고 있는 간호사를 가리키며 `저기 저 간호사 양반한테 줄려고`

할머니께서 주신 비닐봉지에는 귤 2개와 캔 커피 2개가 들어있었다. 사연인즉 할아버지가 병동에 오랫동안 입원 중이신데, 담당 간호사가 할아버지는 물론 할머니께 친절히 대하는 게 고마워서 벌써부터 전해주고 싶었는데, 간호사들이 너무 바쁘게 일하다보니 말을 붙일 겨를이 없어 망설였다는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그것도 모르고 할머니를 오해했구나. 사실 처음 할머니를 보았을 땐 무슨 불만을 따지러 오신 분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두 사례를 경험하며 누군가를 바라볼 때, 선입견을 갖고 대하면 결국 상대도 자신을 똑같이 바라본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따뜻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음을 일깨워줬다. 올해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보면서 참 바쁘게 부지런히 달려오느라 누군가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는지, 오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을 하게 된다. 2020년에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맺어진 환자와 의료진의 모습을 그려본다.

서미경 대전 대청병원 간호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