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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칼럼] 선입견이 낳은 오해

2019-12-24기사 편집 2019-12-24 17: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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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신뢰 중요

첨부사진1서미경 대전 대청병원 간호부장

'죄송하지만 차비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주말을 맞아 가족모임 참석을 위해 원주행 시외버스를 기다리던 중, 40대 초반의 낯선 여성이 다가와 말을 붙였다.

'아니, 언제 봤다고 돈을 빌려달라지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나?' 그러나 내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그 여자분은 다시 한번 자기 사정 얘기를 했다.

자기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주면서 '제가, 급히 친정을 가야 하는데, 차비가 부족해서 부탁드리게 됐습니다. 돈은 계좌번호로 꼭 보내드리겠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정했다.

터미널 같은 곳에서 차비 보태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터라 신뢰가 가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간절히 부탁해서 얼마나 필요한지 물었다. 그러자 '3만 원만 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라고 답이 돌아왔다.

마침 원주행 시외버스도 도착해서 3만 원과 계좌번호를 건넸다. '고맙습니다. 이틀 후에 꼭 보내드릴게요' 라고 인사하는 여자를 뒤로 한 채 버스에 올랐다. 그래, 그냥 3만 원 적선한 셈 치자. 보내긴 뭘 보내겠어. 그렇게 그 일을 잊고 월요일에 병원 출근 후 일을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 한통이 왔다.

메시지에는 '지난 토요일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3만 원과 음료수 드시라고 2000원 더 보냈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아직 우리 사회는 믿을만 하다고 생각하며 잠시 의심했던 나 자신이 쑥스러웠다.

병원에서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접한다. 환자와 가족, 직장 동료, 그 외 주변인들까지. 그 중에서도 환자와 그 가족과의 만남은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친절하며 따뜻하게 대해 주는 분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있다.

더구나 불만 사항을 부풀려 문제 삼는 분들도 있다 보니 현장 간호사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진통제가 안 듣는 것 같다며 다시 놔달라는 경우나, 왜 빨리 진료해 주지 않느냐며 병원장을 찾는 환자, 주사를 잘못 놓은 것 같다며 소리치는 환자 등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경우까지 겪다 보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쉽지 않다.

하루는 외과 병동을 라운딩하고 있는데, 70대 중반의 할머니 한 분이 병동 간호스테이션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병동 간호사들은 할머니께 눈길조차 보낼 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하실 말씀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말 없이 돌아서 그냥 병실로 향했다. 이상한 생각에 병동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저 할머니 그냥 왔다 갔다 하셔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라고 했다.

일주일 후, 또 외과병동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할머니를 만났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든지 직접 이유를 듣고 싶었다. 할머니 앞을 가로막고 서서 '할머니,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세요'라고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할머니께서 작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할머니는 바쁘게 일하고 있는 간호사를 가리키며 '저기 저 간호사 양반한테 줄려고'

할머니께서 주신 비닐봉지에는 귤 2개와 캔 커피 2개가 들어있었다. 사연인즉 할아버지가 병동에 오랫동안 입원 중이신데, 담당 간호사가 할아버지는 물론 할머니께 친절히 대하는 게 고마워서 벌써부터 전해주고 싶었는데, 간호사들이 너무 바쁘게 일하다보니 말을 붙일 겨를이 없어 망설였다는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그것도 모르고 할머니를 오해했구나. 사실 처음 할머니를 보았을 땐 무슨 불만을 따지러 오신 분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두 사례를 경험하며 누군가를 바라볼 때, 선입견을 갖고 대하면 결국 상대도 자신을 똑같이 바라본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따뜻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음을 일깨워줬다. 올해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보면서 참 바쁘게 부지런히 달려오느라 누군가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는지, 오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을 하게 된다. 2020년에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맺어진 환자와 의료진의 모습을 그려본다.

서미경 대전 대청병원 간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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