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1900년 즈음 전 세계 과학자들의 가장 큰 화두이자 이슈는 증가하는 인구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었다. 당시 전 세계 인구는 15억 명을 넘어서고 있었으며, 식량 생산 능력을 고려했을 때 20억 명을 넘어서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과학적 결론이었다. 농작물은 토양에 묻혀있는 고정질소가 중요한데, 농작물 증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토양 고정질소가 줄어들고 농작물 증산에 한계가 봉착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한 것은 독일의 천재과학자 프리츠 하버였다. 하버는 공기 중의 질소를 농축, 고온·고압과 촉매로 수소와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제조했다. 여기에 질산·황산과 혼합해 비료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 비료로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하버는 1918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하버의 노벨상 수상에는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 그가 세계 1차 대전에서 독일의 폭약 제조를 지원했고, 세계 최초로 독가스까지 개발해 전장에 살포까지 한 전범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노벨상 수상한 그의 인생은 초라하고 우울했다. 독가스 개발을 만류하던 부인은 자살했으며, 독가스는 유태인 학살에 사용됐다. 결국 스위스로 망명했다가 심장마비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과학자의 연구를 향한 열정 이면에 어떤 철학이 내재해있는 지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중소화학기업 바스프의 학부출신 엔지니어 카를 보슈는 하버의 비료를 대량생산 하는 공정·촉매기술을 개발했다. 보슈도 193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만들어진 생산방식 `하버보슈법`은 지금도 전 세계 식량 생산의 40% 정도를 감당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열정과 집념, 위험을 무릅쓴 도전이 어떤 성과와 결과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기록들이, 과학자의 잘못된 출세와 권력욕이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에 대한 기록들이 `공기의 연금술`이라는 책에 담겨있다.

조선 세종 시대 총애를 받던 천재 과학자 장영실은 어느 날 임금의 가마를 제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후 제작한 가마가 부러지자 파직당하고 내쳐진다. 총애하던 천재과학자에게 가마를 만들라고 한 것이나 부서졌다는 이유로 파직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파직 이후 장영실에 대한 기록이 전무한 것은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는 장영실을 아끼던 세종이 중국의 압박을 못 이겨 그를 몰래 멀리 떠나보내고, 장영실은 유럽에서 레오나르드 다빈치를 만난다는 상상의 나래로 이어진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가 17세기 초에 그린 유명한 소묘 그림, 한때 한복입은 남자로 알려졌던 이 그림은 루벤스 이전에 누군가가 그린 그림을 다시 그린 것으로 알려졌고, 그 모델의 정체가 최근까지 이슈였다. 이 모델이 장영실이라는 나름의 근거와 다빈치의 과학적 방식이 장영실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이유까지 주장하며 숨 막히는 첩보소설로 엮어간 책이 `한복 입은 남자`다. 세종과 장영실의 역사에 대한 판단은 각각일 수 있지만 천재 과학자에 대한 추적, 과학자를 품은 리더의 대응, 그것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흥미진진한 역사를 상상으로 엮어내는 소설의 재미가 쏠쏠하다.

대덕연구개발특구에는 1976년 이래로 구축해온 역량과 인프라 자산이 있으며, 수만 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연구소·대학·기업에서 세상을 바꾸는 도전을 하고 있다. 누가 제2의 하버·보슈·장영실이 돼 세상을 바꾸게 될지 알 수 없다. `공기의 연금술`과 `한복 입은 남자`는 과학기술이 사회 및 특수한 국가적 상황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또 과학자와 엔지니어의 보이지 않는 도전과 사투, 그들의 철학과 리더의 생각, 국가사회의 상호작용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미래를 만들어낸다는 인문학적 성찰에 도달하게 해준다. 추운 겨울, 과학기술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책들을 집어 들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인문학적 성찰을 높이는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은 어떠할까 생각해본다.

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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