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 영동 추풍령중 교사
김기훈 영동 추풍령중 교사
매일 12시 50분이면 한 무리가 간식거리를 고른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간단히 챙겨 계산줄에 서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친구들과 나눠 먹을 것까지 넉넉하게 품에 안은 학생도 있다.

이들을 맞이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들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행여나 계산이 틀릴까 긴장해서다. 어쨌든 다들 표정은 즐겁다. 지난 11월 27일 추풍령중학교에 학교협동조합 매점 `추스림(Chu`s林)`이 임시로 문을 열면서 생긴 새로운 풍경이다.

전교생이 42명인 작은 학교지만 하루 20분만 문을 여는 학교 매점은 아주 잘 운영되고 있다.

추풍령중학교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매점 이름, 판매 품목, 판매 가격, 판매 담당까지 학생, 교사, 학부모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학교 매점을 열면서 학생들은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여럿이 함께 힘을 합치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학교 매점을 운영하면서 교실에서 교과서로만 배우던 지식들을 생생하게 경험해보고 있다.

이 학교협동조합은 매점 운영 외에도 다른 활동들을 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다. 텃밭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가공하여 판매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윤`, `경쟁`이 아닌 다른 방식의 경제 활동을 직접 살아보는 경험도 하면서 민주시민의 핵심 역량을 기르고 있다. 우리 마을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해보거나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아볼 궁리를 할 수 있게 하면서 학교와 마을이 좋은 `평생 배움터`가 될 수 있도록 학교와 마을을 잇는다.

`이카스톨라 이야기(아마이아 안테로 인차우스티, 주수원 외 옮김)`에 따르면 스페인은 협동조합이 주축이 된 마을교육공동체에서 `신뢰의 교육학`을 실천한다. `신뢰의 교육학`은 학생들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갖추고 서로 소통, 협동하며 역량을 키워가는 교육을 말한다.

OECD `교육 2030 프로젝트`에서도 2018년 `변혁적 역량`, `개인과 사회의 웰빙`, `학생주체성`을 미래 교육 역량으로 발표하면서 개인적인 성공을 강조하던 기존의 교육 방식을 지양하고 학생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을 강조하였다.

`신뢰의 교육학`과 `OECD 교육 2030 프로젝트`의 큰 방향은 추풍령중학교가 학교협동조합을 통해 해보고 싶은 교육의 방향과 닮아있다.

며칠 전부터 매점 물품 가격을 10% 정도 올리고 인기 품목의 경우 구매 수량을 제한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매점을 임시로 운영한 2주 동안, 물건이 싼 것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며 돈이 있다고 제한 없는 소비를 하면 공동체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는 점을 배웠기 때문이다.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의 논의가 시작되었다.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기대가 된다. 누군가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해결해나갈 수 있으며, 그 길에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김기훈 영동 추풍령중 교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