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규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장호규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뉴욕 대학 토마스 필리폰 교수가 최근 내놓은 `The Great Reversal`이라는 도서가 화제다. 저자 필리폰 교수는 미국의 현재 상황은 독점 혹은 과점체제에 가까워져 있다고 진단한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미국 경제는 경쟁체제가 견고해 소비자들의 천국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인터넷 서비스 등 몇몇 중요한 소비재의 경우 미국 소비자들은 유럽 소비자들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현재 미국 시장이 과거 반독점법으로 인해 건전한 경쟁구도가 정착돼 있던 시장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는 지난 10년 이상 경제학자들이 수많은 논문을 통해 지적한 바와 일맥상통한다. 1990년대 이래로 경제 성장률과 노동임금, 그리고 생산성이 감소했고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 지수가 상승했다. 이와 동시에 시장에서 지배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상승했다. 1987년부터 2016년에 걸쳐 5000명 이상을 고용하는 기업의 비중은 28%에서 34%로 높아졌고, 1997년부터 2012년 사이 900개 경제부문에서 상위 4개 기업이 차지하는 매출액 비중은 26%에서 32%로 상승했다.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추세를 첨단 기술을 앞세운 대기업들의 파괴적 혁신 활동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첨단 기술 대기업들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이유를 설명 할 때 두 가지 상충하는 가설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반독점법 혹은 공정거래법의 강도가 약해져서 시장 자체가 거대기업에 유리해졌다는 가설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슈퍼스타 기업들이 초기 시장 선점효과를 등에 업고 거대해진 후 법이나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도록 로비를 해서 지속적으로 시장에서 지배자적 위치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만일 슈퍼스타 기업들이 정말로 자신들의 경쟁우위를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가고 있다면, 그들의 투자 역시 늘어나야 하는데 실제 데이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두 번째 가설은, 슈퍼스타 기업들이 뛰어난 효율성을 바탕으로 시장의 지배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는 설명이 있다. 실제로 기업의 크기가 클수록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들이 보고되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효율성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슈퍼스타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도 문제지만, 정권에 로비를 가하거나 잠재적 경쟁자들을 인수 합병 등으로 사라지게 만들거나 하는 등 행위에 집중해 현재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처럼 미래에 잠재적인 해가 될 상황을 더 걱정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혁신을 통한 경제 성장이며, 동시에 소비자 후생이기 때문에 이에 방해가 된다면 진지하게 규제를 고려해 봐야 한다는 것이 필리폰 교수의 주장이다.

한국 경제는 오랜 기간 이러한 상황을 겪어왔다. 재벌들이 한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정경유착 등을 통해 국민 경제에 거대한 해를 끼쳐온 것도 사실이다. IMF 사태 이후 재벌체제는 더욱 공고해졌고,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래로 삼성전자라는 슈퍼스타 기업이 등장하는 등 한국은 어느 때보다 더 대기업 시장점유율이 높은 상황이다. 아직 많은 연구가 나오지 않고 있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미국보다는 우리가 더 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의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공정경쟁법의 수준을 매우 높이고, 징벌적 보상제도를 적극 도입하며, 처벌 수위를 높이면 된다. 너무 오랜 기간 우리는 경제 성장을 위한 불공정 경쟁체제를 용인해 왔다. 한국경제가 공정한 경쟁체제를 보장한다고 믿는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모든 것이 거대하게 바뀌는 지금 이 시점에 심도 있는 연구와 논의를 통해서 국내 경제에 올바른 경쟁체제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못할 것이다. 장호규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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