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호 대전 동구청장
황인호 대전 동구청장
관서출신으로 중국 후한의 재상이 된 양진은 학문을 좋아하고 청렴결백해 관서의 공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당시 사회는 환관들이 황제 위에 군림하며 권도를 무자비하게 휘둘렀고 뇌물과 부정한 청탁이 끊이지 않아 백성들은 고통스러웠다.

양진이 동래군의 태수로 부임했을 때 창읍의 현령 왕밀이 밤늦게 찾아왔다. 왕밀은 양진이 관리로 천거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은혜에 보답고자 금 열 냥을 갖고 찾아왔다. 그리고 그 금을 양진에게 건네며 밤이 깊어 아는 사람이 없다며 받을 것을 권유하자 양진은 단호하게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알고 있다` 그 유명한 사지(四知)는 여기에서 비롯했다.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뜻으로 양심에 어긋남 없이 행동하는 청렴함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쓰인다.

양진의 일화는 200여 년 전 저술된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와 함께 지금도 공직자가 갖춰야 할 근본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청렴을 가로막는 부패와 부정청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도에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해 온 사회병리현상이다.

왕밀이 늦은 밤 사람의 눈을 피해 양진을 찾은 것은 고마운 마음의 표현과 함께 향후 기대할 수 있는 자신의 이익을 위함이 확실하다. 뇌물은 공정을 깨뜨리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방해해 결국은 그 사회 전체를 부패하고 무능하게 만든다. 당장은 어느 누군가 이익을 볼지 모르지만 사회적 비용은 훨씬 더 커지는 현상을 초래할 것이다.

최근 부패근절을 주목한 한 연구는 공직자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법률상의 허점이나 결함을 보완하는 제도 중심의 통제로 논의한 바 있다. 이는 지연·혈연 등 인간관계 중심의 집단 형성과 공물(公物)의 사물관(私物觀)화 되는 부패를 유발하는 우리나라만의 문화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부정부패 방지를 위해 매년 관련 법률을 만들고 보완해가며 처벌수위도 높여가고 있지만 아직도 비리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우리 구는 청렴 의식 함양을 위한 직원교육을 실시하고 갑질을 금지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외부기관 조사에서 우리 구 청렴도는 전국 평균을 웃도는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필자는 반칙과 특혜를 없애고 항구적 청렴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라고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고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반문이 있겠지만 상식을 회복하는 일이 가장 큰 일이면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얼마 전 직원들의 청렴도 향상을 위해 정약용 선생 연구의 대가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을 초빙해 특강을 개최했다.

이틀 후 같은 자리에서 공직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48명의 신규 공무원 임용식이 있었다. 조선시대 정약용 선생과 신세대 새내기 공무원. 디지털과 아날로그처럼 공존할 수 없지만 다산 선생의 청렴이 이제 공직생활을 시작하는 신규 공무원들의 마음속에 터 잡게 하고 이들이 나쁜 유혹에 빠지지 않게 보살펴 조직의 기둥으로 성장한다면 `정약용 선생의 가르침이 21세기에 화려하게 꽃을 피우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졌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격언이 있다. 공직사회가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청렴이라는 전통적 덕목에 충실해야 한다. 제도적 차원의 해법도 필요하지만 확고한 청렴이라는 도덕성 위에 상호보완적으로 시행돼야 할 것이다.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제도나 시스템이 옷이라면 청렴은 옷을 입는 사람이다. 부패근절의 열쇠는 우리 자신이며 청렴이라는 도덕성이 근간이다. 그 옛날 양진이 말한 사지(四知), 청렴이라는 두 글자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우리 사회는 조금 더 깨끗해지지 않을까.

황인호 대전 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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