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 빼고 내년 예산안 강행처리 눈살

김시헌 서울지사 정치담당 국장
김시헌 서울지사 정치담당 국장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20대 국회, 그 마지막 정기국회가 마감됐다. 여야의 대치 끝에 정기국회 마지막 날에서야 내년 예산안과 일부 민생법안을 가까스로 처리했다. 512조원에 달하는 내년 예산안은 법정 시한을 넘기고서야 본회의를 통과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가칭)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4+1` 협의체를 통해 예산안 수정안을 만들어 본회의에 상정하고 표결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패싱을 당하며 존재감을 잃었다.

여당으로서는 예산안을 강행처리하기까지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제1야당이 선거법과 공수처 설치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을 막기 위해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고, 이를 예산안 처리와 연계하면서 선택의 폭이 좁았던 것이 사실이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정부의 집행절차에 지장을 주는 것은 물론 예산 적기 투입 시기 역시 지연될 수밖에 없어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판단 역시 강행처리의 배경이 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갈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여야가 싸움질에 몰두하느라 예산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야는 지난 10월 말 국정감사 종료 직후부터 예산안 심사에 들어가야 했지만 패스트트랙 법안과 관련한 정쟁에만 몰두하느라 예결위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 결국 512조원이나 되는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 심의는 파행을 거듭했다. 결국 막판 시간에 쫓기자 3당 원내대표와 예결위 간사들끼리 합의를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불발에 그치면서 4+1 협의체가 수정한 안으로 뚝딱 처리하고 말았다.

여당 주도로, 밀실에서 이뤄진 예산안 심사는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들은 자신이 낸 세금이 과연 적재적소에 투입되는지, 불요불급한 예산을 끼워넣은 것은 없었는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예산은 없었는지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예산 심의 과정에선 이런 부분들이 드러나지 않았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100여 개의 문제사업을 적시해 삭감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국회 본연의 예산심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는 어렵다.

예산안 처리가 그렇게 끝나고 국회 주변엔 홍보성 보도자료만 넘쳐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들이 무슨 사업, 무슨 예산을 얼마나 확보했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리려는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민들에게 자신의 업적을 과대포장하는 일도 다반사다. 와중에 여야를 막론하고 실세들은 자신의 지역구 예산은 살뜰하게 챙겼다. 반면에 예산안 부실 심사가 부끄러웠노라고 고백하는 의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참으로 낯 뜨거운 20대 국회의 자화상이다.

예산안 강행 처리의 후폭풍은 이제 패스트트랙으로 옮겨 붙고 있다. 초읽기에 들어간 패스트트랙과 관련해 민주당은 예산안 처리에서 확인된 4+1협의체 공조를 재가동하면서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심산이다. 한국당은 이를 저지하겠다며 황교안 대표와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1년간 대립해 온 선거법과 검찰개혁법안의 운명도 곧 결정될 예정이다. 오늘 중으로 패스트트랙 법안의 본회의 상정이 예고돼 있지만 처리 여부는 미지수다. 여권은 늦어도 내년 총선 예비후보 등록일은 17일까지는 이들 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20대 국회의 법안처리율은 30.6%로 기록하는 등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얻었다. 임기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정권 교체, 여야 교체, 정당 분열과 이합집산 등 그 어느 국회보다 숱한 정치사적 변곡점도 겪었다. 그런 20대 국회가 마지막까지 패스트트랙의 상정 처리과정에서 다시 지난 4월과 같은 충돌을 빚는다면 우리 정치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부디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란다. 김시헌 서울지사 정치담당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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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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