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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기대감과 여유로움을 갖고 기다려 주세요

2019-12-13기사 편집 2019-12-13 07: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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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이순희 공주 귀산초 교사
한 아이가 아침부터 뭐가 그리 신나는지 교실 한구석에서 웃고 떠들며 놀다가 내게 다가와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뜬금 없이 "선생님! 오늘은 천사 되고 싶으세요? 악마 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선생님은 매일 예쁜 천사가 되고 싶은데"라고 답했고 그 아이는 친구들한테 달려가 "얘들아, 우리 오늘 선생님 천사 만들어줄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그래, 오늘 우리 잘하자"라며 교직 경력 22년 차지만 초보 1학년 교사를 쥐락펴락한다.

주로 고학년을 담임했던 나는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처음 1학년을 맡게 됐다. 예상치 못 한 일로 목덜미 잡을 일도 많고, 기가 차 헛웃음만 나오는 일도 다반사지만 난 여유롭게 아이들을 바라본다. 모든 순간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해 그 안에서 치열하게 꿈틀거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2008년 6학년을 맡았다. 5학년 사전 탐색을 열심히 했던 나는 3월 첫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안도의 한숨과 배시시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장밋빛 청사진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5학년 말 전학온 뒤 친구들과도 서먹한 듯 말 없이 앉아서 할 일을 하던 한 아이는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내 골머리를 앓게 했다. 그 아이는 저학년 학생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주먹을 날렸고 그로 인해 저학년 담임교사와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그 아이와의 개별 상담을 통해 작은 키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를 알게 됐다. 다독이고 격려하며 2학기가 됐고 비슷한 상황이 반복돼 다소 지쳐가고 있을 즈음 큰 사건이 터졌다. 그 후 나는 마음속으로 포기를 선언했고, 그 아이의 미래까지 속단하며 졸업을 기다리며 유례 없이 속 시원한 헤어짐을 경험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어느 날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헤어지기 전에 전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잡아 줘서 고마웠다는 말과 앞으로 계획까지 적힌 당찬 편지까지 전했다. 고작 1년도 못 채운 진심과 변화를 기대하며 다그쳤던 나의 조급함, 그리고 섣부른 속단으로 내뱉었던 말들이 떠올라 미안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포항으로 진학한 아이는 대학을 졸업했고, 소방관을 꿈꾸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지치고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연락을 준다. 그저 잘하라는 격려뿐이지만 미세먼지만큼이라도 힘이 되길 바란다.

요즘 후배 교사들이 간혹 찾아와 아이들에게 매일 입력은 하는데 산출이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숫자로 나오는 산출은 단기간에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마음이 금새 변하겠는가. 아이들은 무심히 던진 한마디에도, 습관처럼 머무르는 시선에도, 짧은 다독임에도, 진심을 숨긴 위로에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반응하고 변화하며 성장한다.

"기대감과 여유를 갖고 기다려야 한다"는 그 아이가 준 큰 선물을 후배 교사에게도 전하고 싶다. 이순희 공주 귀산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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