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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문학] 신춘문예의 계절

2019-12-12기사 편집 2019-12-12 08: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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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마다 신춘문예의 공고가 나기 시작할 때가 되면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대학 졸업을 전후하여 몇 차례 미역국을 먹은 후 아예 꿈을 접었을 때인데도 그랬다.

마흔 가까이가 된 어느 날, 공들여 쓴 소설 한 편을 들고 어린 아들애와 함께 광화문까지 나가 호기롭게 접수를 했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당연히 낙선했다. 다음 해부터는 나름 치밀하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일일이 원고지에 옮겨 써야 투고가 되던 시기여서 마무리를 하려면 손목 꽤나 아팠다. 미리 써둔 소설도 마감시간에 임박해서 다시 보면 어쩜 그리 오점이 많은지. 원고지에 옮기면서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느라고 마감시간을 놓친 적도 있었다. 김장 때와 맞물린 시기이지만 그깢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렵사리 구한 김장꺼리로 뒤늦은 금장을 마치고 나면 마음은 온통 전화기로 쏠린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걸려온다는 당선소식을 기다리는 애가 타는 시간. 마침내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맞게 되는 자신에 대한 불만과 자책. 새해 첫날이면 당선자들의 면모를 꼼꼼하게 따져보며, 나보다 별반 나을 것도 없는 이가 선택된 것에 따른 한탄과 때론 찬탄, 질투로 얼룩진 시간들.

살림만 하던 주부들이 창작교실로 몰려들던 1990년대. 다년간 숙련을 거친 경쟁자들은 겁 없이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렸다. 나 또한 그런 무리들에 끼어 어렵게 등단하였다.

'장미군단'이라고 평론가들은 그런 우리를 한통속으로 싸잡아 폄하했다. 오랜 시간동안 다듬은 것이 분명한 작품 한 편으로 운이 좋아서 어쩌다가 등단했으나 당선작이 바로 은퇴작이 될 거라고 입을 모았다.

그래도 장미는 해마다 피어나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요즘 같이 이상기온일 때는 한 해에 두 번도 핀다는 사실을 그들은 정녕 몰랐을까. 그 장미군단 중에서 굳건하게 살아남아 아직껏 꽃을 피우고 있는 작가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이참에 널리 알리고 싶다. 이 땅엔 온갖 찬사를 받고 등단했으나 당선작이 은퇴작이 된 남성작가들도 넘치게 많다는 사실도 함께.

아직은 투고자 모두가 기대에 부풀어 있을 금쪽같은 시간. 모처럼 가쁜 숨 고르고 있을 이 기간만큼은 최대한 여유롭게 보내도 좋겠다.

당선자에게도 낙선자에게도 똑같이 은혜로운 이 시간이 지나면 비상사태가 기다린다. 이제껏 노력했던 것보다 더 치열하고, 더 냉엄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다. 더 길게 더 오래 살아남아 꽃을 피우려면 이제 시작이라는 자세로 더 더 더,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1985년. 대전일보는 처음 신춘문예를 공모한 이래 올해도 어김없이 신진작가를 배출한다. 햇수로 36회가 되지만, 불행히도 중간에 잠정적으로 중단된 7년을 빼면 올해 30회 신진작가가 탄생된다. 중부지역에서는 가장 경륜이 있는 탄탄한 등단통로로 알고 있다. 이미 내로라하는 중견작가들이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96년부터 대일문인협회를 결성한 대전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들은 바로 엊그제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동인지 '대일문학 22집'을 내놓았다. 선배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작년도 새내기 당선작가의 작품까지 실려 있다. 우리 같은 단체는 아마도 전국적으로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요즘같이 문예지의 지면이 인색한 때, 작품을 실을 지면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한 번이라도 더 지면에 작품을 올려야 작가이다.

이제 막 새로운 세계로 진입할 신진작가들을 두 손 벌려 환영한다. 함께 할 그날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모두의 분투를 빈다.

김해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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