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연 충남대 교수
박수연 충남대 교수
해마다 이맘때면 문학 창작에 뜻을 둔 사람들을 열망의 마당으로 끌어들이는 제도가 있다. 신춘문예가 그것이다. 문학 청년들은 투고작을 다듬기 위해 깊은 밤에 불을 밝히고, 당선 소식을 듣기 위해 우편함과 전화기를 수시로 살필 것이다. 간절한 기다림이 많은 경우 가혹한 소식으로 귀결되겠지만, 그 가혹함은 낙선자들의 자기 성찰을 더 섬세하게 진행시키고 그 성찰은 더 많은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필자는 언어로 언어를 위해 고민하는 사람치고 삶을 저버리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한국에서 신춘문예가 처음 실시된 것은 1925년 동아일보 지면이었다. 지금 사람들에게 널리 기억되는 첫회의 당선 문인은 동화작가 윤석중이다. 그러고 보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곧 한국문학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당선자들은 잘 알아둬야 할 일이다. 물론 이것은 당선자에게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일 것이다.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세상은 소식을 듣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을 톡톡히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신춘문예만 해당되지 않는다. 어떤 제도든 등단절차를 거친 모든 문인들은 공통적으로 삶의 환경이 한순간 비약해버렸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친구를 통해 당대 러시아의 문단을 이끌던 벨린스키에게 등단작 초고를 보여주고, 벨린스키의 초대에 응해 대화를 나누고 나온 도스토예프스키는 거리에 서서 하늘과 사람들을 보며 세상의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혀 새로운 그 무엇이 방금 시작되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그는 썼다. 이 경험은 모든 새로운 문인 예술가들의 공통 경험이다.

해마다 새로움이 문학에 더해져서 그만큼씩 한국문학이 변해왔다면 지금 한국문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새로움이 과연 실현됐을까? 축자적 의미의 새로움이라면 실로 한국문학은 이루말할 수 없는 어떤 지경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움이 항상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나 가치의 새로움일 수는 없는 법이어서 때로 그것은 올드 패션을 새로움의 반열에 올려 놓기도 한다. 조선의 근대시를 민요조 시가에서 찾았던 사례들이 그것의 한 예일 것이다.

한국 근대시의 형성에 주요한 등이 1919년 이후로 기여한 정황을 고려한다면 1922년에 대전에서 출판된 일본 시동인지 `경인(耕人)`이 아예 망각의 늪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사실은 매우 불편한 문학적 사실이다. 이것이 불편한 사실이라면, 해방공간에서 전개된 대전의 문학을 이야기할 때 등사판 프린트물에 지나지 않는 `동백`은 거론해도 공식 인가된 출판물이었던 `현대`지가 거의 외면당하다시피 하는 일은 매우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때로 대전의 문학사를 거론하는 자리에서 이 잡지가 존재했던 사실과 의미를 확인하곤 하지만, 대부분은 그때뿐 이 잡지의 흔적을 대전문학의 수면 위로 올려놓으려는 일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항상 반복되는 일이지만, 억압된 것은 언제든 의식의 표면으로 솟아나기 마련이다. 보도연맹 학살사건도 그렇고 제주 4·3도 그렇다. 역사는 사실을 숨겨진 상태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억압된 것은 결국 돌아와 억압했던 힘에 그 억압의 의미와 결과를 되돌려주기 마련이다. 그렇게 새 역사는 씌어지기 마련이고, 언제나 그 다시 쓰기의 과정에 문학이 있었으며, 문학을 새롭게 하는 것이 또한 새로운 언어와 삶의 의미를 들고 나오는 신인 문인들이었다.

대전의 신춘문예는 그런 의미에서 대전의 문학적 신생을 간절히 드디어 보여주는 제도여야 할 것이다. 대전의 문학은 대전이라는 근대 도시의 출발과 관련해서 본다면 아무래도 근대문학의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이 웬 낡은 소리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줄 안다. 그러나 문학은 언제나 주어진 세상의 결을 거스르는 언어이다. 낡음이 새로움의 모태로 될 수 있는 언어가 문학에서는 매우 의미 깊다. 그래 지금 더 대전 특유의 역사적 목소리가 간절해지기도 한다. 간절했으나, 바람에 비래 자주 가혹하지만, 드디어 나타날 신인이 미리 그리워지는 때이다. 박수연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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