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증발하면 비가 되지만 슬픔이 증발하면 무엇이 될까?

스쿨존에서 달리던 차량에 치여 지난 9월 아홉살 초등학교 2학년 민식이가 숨졌다. 5월에는 축구클럽 승합차가 과속에 신호를 위반하며 사고를 내 차량에 탑승했던 초등생 유찬이와 태호가 사망했다. 네 살 하준이는 2017년 10월 가족과 함께 놀이공원을 찾았다가 제대로 제동장치를 하지 않은 차에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2016년 4월 어린이집에서 하원 차량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다섯 살 해인이는 경사로에 기어를 제대로 하지 않은 SUV차량이 뒤로 밀리며 치여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4월 일곱 살 한음이는 특수학교 통학버스 안에서 심정지 상태로 36분 가량 방치됐다가 뒤늦게 발견, 68일간 투병하다 사망했다.

태안화력발전소의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한 스물 네 살 청년 김용균은 지난해 12월 10일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장비에 끼여 숨졌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이 탑승했던 세월호의 생존자는 172명 뿐이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이자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라고 썼다. 그에 따르면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이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모른다. 슬픔을 모르기에, 살아있는 우리는 슬픔 앞에 겸손해야 한다. 의사당 안에서도, 의사당 밖에서도. 슬픔의 존엄을 인정 못할 때 우리는, 나와 당신은 무심결에 `기계`가 되고만다. 피부로 거죽만 치장한 기계.

김인환 문학평론가는 "생명을 죽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남을 다치게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도 인간에게는 주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나와 남의 다친 영혼을 달래는 길뿐"이라고 설파했다. 지금 누가 그 의무를 해태하는가?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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