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학생들이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유명한 대학, 인기 있는 학과에 진학하려는 이유는 역시 좋은 일자리 때문이다. 그래서 공정성은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좋은 대학과 좋은 일자리를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국민들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부정하지 말고 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바람직한 교육 혁신을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온 나라가 4차 산업혁명에 의해 사회가 달라질 것이라고 외쳐대고 있다. 교육부는 미래 사회에서 요구되는 핵심역량을 길러 주라고 교육과정까지 바꿔 놨다. 직업을 가진 후에 필요한 역량들을 잘 찾아 놓은 것이다. 문제는 역량중심 수업이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도 교육청도 시늉만 할뿐 제대로 된 관심은 없다.

지난해 교육부에서 교육과정 및 수업역량 강화 워크숍을 열었다. 대전을 대표하는 교사 동아리 중 한 팀으로 필자도 참가했다. 행사에 참여하면서 교육부 연구사에게 다음과 같이 권유했다. 워크숍에 의해 선생님들의 생각은 얼마나 바뀌었는지, 바뀌지 않았다면 무엇이 부족한지 설문 조사를 해 보자고. 지금 당장은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원인을 진단하고 개선하면 앞으로는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사는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행사를 주최해서 치렀다는 사실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워크숍을 통해 교육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는 애초에 없어 보였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빠듯한 일정 속에서 급하게 추진하는 행사라서 남는 예산을 털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의심했는데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효과가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행사를 치렀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중요한지 정말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로만 떠들고 시늉만 한다. 그러다가 교육과정이 잘못됐다고 또 한 번 개정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계속 교육과정만 바꿔왔다. 이제는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말로만 떠들지 말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필자도 하나의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바로 공정성과 핵심역량의 융합이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되는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된다. 하지만 현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역량 중심의 수행평가를 살펴보자. 학교 현장에서 적용되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는 공정성 때문이다. 핵심역량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와 각 교과의 내용과 연계된 평가 기준 등이 없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강조만 하고 있다. 교사의 주관과 역량에만 맡겨 놓으니 공정성이 확보될 리가 없다. 결국 교사들은 핵심역량과 공정성 중에서 공정성을 선택해서 지필고사 위주의 평가를 강화한다. 어렵게 용기를 내서 역량 중심의 수행평가를 실시하면 공정성 문제에 휘말리게 된다. 꾸준히 용기를 내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핵심역량도 신장시키면서 평가의 공정성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 기존 강의식 수업을 탈피하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핵심역량 신장 중심의 수업으로 혁신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지원해줘야 하는지 교육부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기존에 해왔던 연수나 워크숍은 효과 없다.

학교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처럼 평가를 위한 각종 서류만 점검해서 교사로 하여금 수업보다 서류를 완벽하게 만들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핵심역량을 신장시키는 수업을 하고 있는지 이를 평가에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를 관리하고 감독해야 한다. 물론 제도적인 뒷받침을 포함해 핵심역량 중심의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여러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김종헌 대전과학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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