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우 공주대 교수
박순우 공주대 교수
지난 20일 전국 17개 시도에서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이 진행됐다. 이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연말모금 시작을 알리는 의미도 있지만, 내년도 사회복지 민간기금의 규모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행사다. 73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추억 속의 단어인 이타심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50여 년 전 티트머스(R.Titmuss)라는 영국학자는 미국과 영국의 복지발달 수준에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을 `헌혈량`에서 찾았다. 복지선진국인 영국사회의 헌혈량이 후진국인 미국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근거로 복지발전의 동력을 이타심으로 본 것이다. 현재는 이 주장이 거의 회자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금회의 활동은 이타심이라는 사회복지의 동인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 유효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실제로 지난 2년 동안 공동모금회를 통한 민간기금의 규모는 매년 6000억 원 정도였다. 이는 우리 사회의 소득파악율이 100%에 달할 경우 즉, 탈세부문을 모두 징수할 경우 금액과 비슷한 정도의 큰 규모다. 이중에서도 특히 개인 모금액이 전체의 30%인 2000억 원에 달하는 것을 보면, 이타심은 여전히 사회복지의 중요한 정서임을 짐작하게 된다.

타인보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중요시하는 후기 산업사회의 시민들에게서 공동체의 이익을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영국이 2차 대전의 폐허를 딛고 복지국가로 거듭나던 시기, 복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버츠칼리즘(Butskellism)이란 용어로 대변됐다. 이는 당시 집권당인 보수당의 재무장관 버틀러(R. Butler)와 그림자 내각인 노동당의 재무장관 케이츠켈(H. Gaitskell)의 이름을 합성한 것으로, 여당과 야당의 경계를 넘어선 합의적 정책기조를 일컫는다. 이들은 어느 당이 집권하더라도 사회복지를 확대하고 주요 기간사업을 국유화하며 중간계층을 복지제도에 편입시킬 것에 합의했다. 하지만 사회적 대타협을 지칭하는 이 용어는 과거사적 표현이 됐다. 지속적인 증세에도 불구하고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교육이나 의료서비스의 질은 향상되지 않았으며, 공공서비스의 질은 민간서비스를 따라가지 못함으로써 기대수준에서 상대적 위기가 발생했다. 이는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약화로 귀결됐다.

오늘날 복지정치에서 국민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필수다. 이는 막대한 복지재원의 확보여부를 결정하는 선결조건이자, 정권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 국민의 복지의식이 소중유검(笑中有劍)의 특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1980-1990년대 신자유주의 정권하의 영국사회는 복지서비스의 질이 악화되고, 불평등이 증가하는 문제를 겪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현재의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할 의지가 있는지 물었다. 다수의 국민들이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순진한 행동이다. 사회조사에서 추가적인 비용부담을 감수하겠다고 응답했더라도 세금을 인상하겠다는 정당에 표를 던질 사람은 거의 없다. 1997년 신노동당이 재집권에 성공한 것은 복지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되 국민들에게 추가부담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공약덕분이었다.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다. 최근 사회조사에 따르면, 복지확대를 위해 증세를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국민의 76%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 몇 차례의 대선에서 집권에 성공한 정당 모두는 더 나은 복지를 약속했지만, 증세를 공약으로 제시하지는 못했다.

증가하는 복지욕구에 대응하기 위해 증세 혹은 사회보험료 인상 등의 공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정치적 위험을 수반한다. 국민연금의 보험료가 기금고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여 년 동안 9%에서 변하지 못한 것이 이러한 현상을 예증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한 민간기금의 규모가 사회의 전체 복지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표현되는 국민의 이타심이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박순우 공주대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