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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산책] 튤립 광기와 거품 가치

2019-11-26 기사
편집 2019-11-26 08: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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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주말 내내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의 대표작품 '우주'(Universe 5-IV-71#200)가 포털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지난 23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낙찰가 132억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품 경매 기록을 새로 쓴데 이어, 김환기와 한국현대미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 화가 작품의 경매가 100억원 돌파는 이번이 처음이다. '우주'는 김환기의 1971년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유일한 두 폭 그림으로 제법 큰 크기(254×254㎝)의 푸른 단색조가 돋보이는 그림이다.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환기는 뉴욕시대 초반부터 거듭한 조형실험으로 새로운 질서와 균형을 작품 '우주'에서 구현해 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번 경매 낙찰가는 어찌 보면 그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한국 현대미술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미술사적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반가웠다. 그러나 이 작품의 예술적 본질적 가치의 평가여부나 작품의 조형세계보다, 향후 김환기(작품)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전망과 이를 구입주도한 재력가 수색으로 인터넷상이 왁자한 상황을 지켜보기란 그렇게 즐겁기만 하지는 않다.

예술이든 특정한 오브제든, 그것의 경제적 가치가 예술적 본질적 가치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다. 예컨대, 17세기 네덜란드의 골든 에이지(Dutch Golden Age) 때, 튤립 값이 엄청나게 치솟았다가 폭락한 사건인 '튤립 광기(Tulipomania)'가 그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와 부르주아 문화가 일찍 꽃피어난 네덜란드의 투기 광풍 상징적 에피소드였던 '튤립 광기'는, 페르시아와 터키를 거쳐서 16세기에 유럽으로 전해진 꽃 '튤립'의 거래와 이를 둘러싼 거품 가치와 연관 있다. 수입된 꽃 튤립은 할렘과 레이던 근처에서 대량으로 재배되며 전성기를 맞았고, 튤립의 아름다움에 열광했던 당시 많은 사람들 덕에 이는 곧 유례를 찾기 힘든 기이한 투기 광풍으로 이어졌다. 튤립의 수요가 계속 늘자 꽃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꽃값 상승은 수많은 사람들이 전 재산을 팔아 화훼산업에 뛰어들게 했다. 꽃값이 계속 오르는 동안에는 모든 사람이 돈을 벌었다. 이것이 또 다른 투자가들을 끌어들였고, 꽃값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 네이버에 따르면, 유명한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종 구근은 1633년에 5백 길더였는데 1637년에는 1만 길더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꽃 한 송이로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점점 튤립 매매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광기를 띠게 되었고, 꽃값이 계속 오르자 실제 손에 쥐고 있는 꽃만이 아니라 아직 땅속에 묻혀 있는 것까지 사고팔게 되었다. 구매자는 선금을 주고 나중에 수확할 꽃을 미리 사두기도 했다. 꽃 모양과 색깔 등이 기록된 약속어음도 등장하였으며 튤립 매매는 연중 거래가 가능한 사업이 되었다. 투기 성격도 한층 강화되었다. 오늘날 선물거래라고 부르는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1637년 2월, 더 이상 꽃값이 오르지 않고 매매도 잘 되지 않았다. 어제까지 천 길더였던 구근 값이 하루가 다르게 폭락하기 시작했다. 꽃값은 오를 때의 속도보다 하락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5천 길더를 호가했던 것이 50길더가 되었다. 당시 튤립 투자는 부에대한 사람들의 광기 같은 욕망으로 부풀려졌다가 거품과 함께 사라졌다. 이후 '튤립 광기'는 경제 버블 사례의 최초로 알려져 있다. 김환기(작품)에 대한 최근 미술시장에서의 긍정적 평가가, 거품처럼 일었던 '튤립 광기'와는 달리 예술적 본질적 가치를 주목하는 사건이 되길 기대한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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