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제천 세명고 교사
이동진 제천 세명고 교사
내가 활동하고 있는 충북 독서교육인문지원단에서는 요즘을 시즌이라 부른다. 11월에 있을 청소년 비경쟁독서토론 한마당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도 올해로 3년 째 참여하고 있지만, 늘 이 시즌이 기다려지고 설레는 이유는 처음 비경쟁독서토론을 접했을 때 느꼈던 강한 충격과 감동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학생들이 체육관만큼이나 넓은 강당에 100명 가까이 모여 성별, 나이, 출신 학교는 잊고 오직 대화만으로 책 속에 깊이 몰입해 가고 있었다. 그 광경은 독후감쓰기나 찬반주제토론처럼 억지로 학생들을 끌고가야만 했던 독서 활동들로 방향감을 잃고 있던 나에게 그야말로 새로운 경지였다. 더 많이 배우고 싶었고, 배운 것을 그대로 우리 학교 아이들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원단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실제로 여기서 배운 비경쟁 토론을 우리 학교의 독서 프로그램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작가초청 북콘서트, 독서캠프, 책 읽기 방과 수업에는 비경쟁 독서 토론이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아예 2학기 고전 읽기 수업 전체를 비경쟁 독서토론을 중심으로 설계하였다. 그 덕에 우리 학교 독서도 굉장히 역동성이 강해졌다.

너댓 명이 같은 책을 들고 모여 앉아 온갖 손짓을 동원해가며 자기 얘기를 하고, 누구는 그걸 집중해서 경청하고, 또 누구는 맞다고 박수까지 쳐가며 맞장구 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흐뭇함이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비경쟁 토론으로 자유롭게 책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반짝이는 보석들의 연결로 보였다. 질투가 나기는 했지만 나도 그 빛나는 연결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툭, 제천에 비경쟁 토론을 기반으로 한 교사 독서 모임이 만들어졌다. 충북 교육도서관 지원으로 책 읽는 사회문화재단에서 애써 주셨는데, 모임 이름도 `책교사 뒤끝 모임`이다. 그렇게 시작한 모임을 벌써 세 번 가졌다. 그림책도 함께 봤고, 지난 번에는 요즘 최고로 핫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도 함께 나누었다. 다음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은유작가의 차례다.

혼자 책을 읽을 때와 나눔을 전제하고 책을 읽을 때의 즐거움은 분명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모임 전까지 책을 읽어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뭘 해야 할지 몰라 찾아오는 당혹감이 없어서 좋다. 외롭지가 않다. 빛나는 연결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 달을 기다릴 수가 있는 것이다.

여행의 이유 때 나랑 같은 모둠에 있던 어떤 선생님이 `저는 이 모임이 여행보다 좋아요. 이게 요즘 제 삶의 낙이에요.`라고 나눠주셨다. 오늘을 기다리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아껴가며 넘겼을 선생님의 설렘 가득한 한 달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졌다. 왜냐하면 나도 그 선생님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책 읽는 사회 문화 재단의 이경근 이사님과 페이스북으로 소통을 하다, 이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충북이 우리나라 독서 문화 확산과 교육 혁신에 강력한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여기에 제천 책교사 뒤끝 모임도 한 몫 단단히 역할을 하고 싶다. 이동진 제천 세명고 교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