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폐에는 두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관(官)이 민간에 피해를 주는 일이라는 원래 의미다. 또다른 다른 하나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말한다. 원래는 앞의 뜻이 유래지만 요즘에 와서는 단어의 쓰임에서 기관과 민간의 관계는 희미해지고 주위에 피해를 끼치는 행동이라는 뜻만 남았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개인과 개인간, 조직과 조직간에는 민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민간에게 끼치는 폐해`로만 설명돼 있다. 그러나 `폐를 끼치다`는 어딘지 정중한 느낌이 들고 `민폐를 끼치다`가 더 느낌이 산다. 태생에 연연하지 않는 언어의 묘미다.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정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듯이 민폐 역시 민(民)이란 한자어의 의미가 완전히 퇴색해질 때까지는 사전에 오를 수 없을 것이다.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민폐에 씌워진 민-관의 관계라는 족쇄가 헐거워진 이유는 사회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관이 민에 피해를 끼치는 일을 경계하는 것보다 시민들 서로 배려하는 일이 더욱 가치를 갖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10년 후면 초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조기 사망하는 고령자 수가 서울에서만 한해 2000명이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안타깝지만 초미세먼지는 여러 질병을 유발하기 때문에 전체 사회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마다 겨울이면 미세먼지에 시달려 왔다. 북서계절풍에 실려오는 대륙쪽 먼지가 범인으로 지적됐지만 자기네들은 아니라며 꿋꿋이 발뺌하던 나라가 있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연구조사로 더이상 변명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한중일 첫 공동연구 결과, 국내 초미세먼지 가운데 32%는 중국에서 비롯됐다고 밝혀졌다. 문제가 되는 겨울철 미세먼지 고농도 시기만 보면 중국발 요인이 70%에 이른다.

살다보면 남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다. 그러나 끝끝내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고 재차 피해를 입히는 건 결국 주위에 신망을 잃게 된다. 자칭 대국이라면서 아시아의 맹주, 나아가 세계의 제일의 국가를 꿈꾸는 나라가 이렇게 처신해서야 믿음을 얻을 수 있을까. 민폐의 새로운 뜻이 어울리는 국가로 낙인 찍힐 뿐이다.

이용민 지방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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