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규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장호규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파괴적 혁신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산업계는 몇 년 전부터 적극적으로 이에 대비하고 있고, 우리 사회 역시 여러 문제점에 대비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또 소위 RegTec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는 새로운 기술비즈니스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게 될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필자도 이와 관련한 칼럼을 써오고 있고, 특히 경제/경영 분야에 대한 기술적 제도적 법적 고민을 해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씁쓸함을 느꼈던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는 과연 전술한 논의를 매끄럽게 진행, 현실에서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필자의 오래지 않은 인생에서 가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경험중 하나는 계약파기다. 일의 진행계획서가 나와 있고 이에 맞춰 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머지 일정을 하루아침에 취소당하는 일을 겪었다. 이후 과거에도 겪었던 비슷한 일들에 대해 고민해 봤다. 언론 기사 및 법조계에서 진행되는 여러 사건의 진행들을 지켜보며 필자는 우리 사회는 계약파기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심지어 필자가 개인적으로 겪은 대다수 문제는 대학/관공서가 연결된 것임을 감안하면 민간에서 발생하는 계약파기가 얼마나 비일비재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왜 이런 아마추어적인 계약문화의 원인이 무엇일까? 우선 계약의 관습 그 자체를 들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는 극히 일부 국제화가 된 대기업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경우 계약서 작성 시점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많다. 심지어 대학 교원의 채용과정도 그러하다. 실상 채용이 확정된 시점은 그 보다 한 참 전인데도, 계약서 작성 시점은 임용 첫 날 혹은 그 이후 시점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국립대학은 임용통보 내용이 포함된 이메일의 법적구속력이 지켜지는 편이지만, 사립대에서는 임용 확정 이메일을 보내놓고도 계약서가 없다는 문제를 악용해 임용을 취소시켜버리는 일도 발생한다. 이러한 계약관습의 특징은 정보 및 관계의 우위가 한쪽으로만 흐른다는 점이다. 계약서를 제시해야 할 쪽이 최대한 그 시점을 늦추거나 계약서를 명시적으로 작성하지 않음으로써, 고용의 주체는 향 후 거의 모든 협상력을 손에 쥐게 된다. 또 대개는 고용의 주체 쪽이 항상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우월한 지위에 있다. 협상력이 우위에 있는 쪽에서는 쉽게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고, 계약의 내용을 바꿀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계약을 파기하고도 법적인 책임을 벗어날 수 있다. 반대로 계약서에 서명해야 하는 주체는 계약 내용과 관련해 질질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경제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는 계약의 한 쪽 주체가 우월한 협상력을 이용해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다. 또 계약 문화가 엉망인 상황에서는 계약의 약자도 강자도 효율적으로 일처리를 하기 힘들다. 처음부터 신중한 상호 협상을 통해 법적 구속력이 동반된 계약서를 작성했다면, 쌍방 계약주체들은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몰두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계약이 불명확할 경우 계약 주체들은 언제라도 계약내용을 틀어버릴 수 있고 , 계약 내용의 잦은 변경 및 계약 이행 자체의 불안감 때문에 온전히 모든 역량을 계약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현재와 같은 이런 불공정한 계약문화는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악습이다. 이러한 악성 계약문화가 지속되는 한 우리 사회가 당연히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수준의 발전 및 생산성을 달성하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제대로 된 계약 문화가 정착된다면 개인 차원, 조직 차원, 사회 전체 순으로 확대돼 순차적으로 우리 사회 전체의 생산성 및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현명하게 맞이해야 할 현 시점에 우리는 이런 작지만 중요한 계약 문화부터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장호규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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