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철 국회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정연철 국회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사에서 사건과 사고는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명멸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명성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11월 12일 밤 KBS-1 TV 9시 뉴스에서 시작된 세계 최고 권위의 `미쉐린 가이드`의 뒷거래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논란의 핵심은 공정한 심사와 평가를 근거로 얻어야 할 레스토랑의 명성을 돈을 받고 뒷거래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의혹에 있다.

한식 레스토랑 `윤가명가`를 운영하는 윤경숙 대표가 지난 2016년 미쉐린 가이드 측으로부터 최고 등급인 3스타 제안을 받았고, 그 제안을 수용하자 연간 2억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는 컨설팅을 요구했다고 한다. 공정한 평가와 투명한 선정을 기대했던 윤 대표는 이 같은 제안에 응하지 않자 `윤가명가`에게는 스타(별)은 고사하고 서울편에 아예 소개 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이들에게 컨설팅을 받거나 협찬을 해준 것으로 알려진 한식당 2곳만 2016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3스타 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의혹과 관련해 14일 미쉐린 가이드 2020 에디션을 발간하는 자리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기자들은 최근 불거진 논란에 대해 미쉐린 측이 어떻게 해명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내놓을 지에 주목했지만 기자간담회는 해명이나 질의응답 없이 자신들의 일정만 설명하고 끝이 났다. 간담회 직후 의혹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빗발치자 마지못해 비공식 간담회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서는 그웬달 뿔레넥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가 답변에 나섰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거나 동문서답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번 의혹과 관련해 언론 보도에 등장한 어니스트 싱어와 데니 입이라는 두 사람은 미쉐린의 직원이었던 적이 없고 미쉐린과 계약관계에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지난해 내부조사를 했는데 직원들이 이들과 연루되거나 내부정보가 유출된 정황이 파악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들(어니스트 싱어와 데니 입)이 한국관광공사와 미쉐린 가이드가 맺은 비공식 협약과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의 발간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항상 새로운 미쉐린 가이드를 내놓기 전에는 많은 루머와 억측이 떠돈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았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한국관광공사와 한식재단이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제작을 위해 2016년부터 5년간 20억 원의 광고비를 집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2017년 국정감사를 통해 뒤늦게 공개되었다는 것이다. 뿔레넥 디렉터는 이번 사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이들(어니스트 싱어와 데니 입)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지는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라고 밝혀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가 없음을 비추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평가방법이 모든 나라에서 신뢰성이 입증됐다고 주장하면서 기존 평가법을 차분하게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특별히 이번 미쉐린 논란대해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미쉐린 가이드는 음식 전문가인 평가원이 신분을 밝히지 않고 손님으로 가장해 식당을 여러 차례 방문해 직접 시식한 뒤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4일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에서는 스타(별) 레스토랑 31곳과 빕 구르망(합리적인 가격의 맛집) 60곳이 선정됐다. 미쉐린 측은 우선적으로 이들 레스토랑을 선정하는데 있어 평가원이 몇 차례 방문했고, 그에 따른 비용을 어떻게 집행하였는지를 투명하게 밝힌다면 이번 논란의 해명은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여겨진다.

무슨 일이든 의혹이 일어났을 때 해명하는 일은 해명하는 당사자의 주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해명을 듣는 사람들이 납득해야 해당 의혹이 사라지는 법이다. 미쉐린 가이드 측의 현재와 같은 해명은 의혹만 더 키울 뿐임을 유념해야 한다.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쉐린 가이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업가이자 투자가인 워런 버핏의 다음과 같은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명성을 쌓는 데는 20년이란 세월이 걸리지만, 명성을 무너뜨리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정연철 국회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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