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달상 작가
류달상 작가
가을 개편을 맞아 대전국악방송 `금강길 굽이굽이`에도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내 이름을 건 코너도 하나 생겼다. `유달상의, 지성과 상상`(내 필명은 류달상이지만 글쓰기 아닌 분야에는 본명인 유달상을 쓴다)이란 코너가 그것인데 이 코너의 이름은 스태프 분들의 제안으로 어펠레이션(命名)한 것이다. 애초에 나는 `달상의 단상`이란 코너명을 제안했다. 달상이란 `달콤한 상상`, 단상이란 `단단한 상식`의 준말이다. 동서양 인문지성들의 사유 안에는 단단한 상식이 들어 있고, 그 상식들 앞에서 내 역량이 할 수 있는 일은 명민한 해설이나 풍부한 적용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달콤한 상상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나, 정말 상상해본 것이다. 자기 이름과 목소리를 앞세워 하는 일에 다른 이들의 조언과 충고는 약이다. 나는 귀 기울였다. 그러나 지성이란 단에 앞에 이름을 앞세우며 신독에 가까운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성이란 나의 지성이 아니고, 밤하늘 별처럼 떠 있는 현자와 덕행들의 그것일 뿐이다. 그래서 코너명의 한가운데 단단하게 찍힌 쉼표 하나가 소중하다.

`금강길 굽이굽이`는 음악프로그램이다. 국악과 국악인들, 소리와 이야기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프로그램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언젠가 썼듯이 삶이 존경과 사랑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창조가 감지되는 것이다. 새로운 코너를 인문 지성들의 사유 속에 들어있는 음악이야기로 채우고 싶은 희망도 거기에 연유한다. 구두 사러 가는 길에서는 사람들의 구두가 잘 보인다. 새 코너를 시작하고 나서, 고전 속 사유에 들어 있는 음악이야기와 음악가로서의 현자들의 모습이 전에 비해 잘 보인다. 매일 한편의 원고를 쓰며 그들을 만난다. 논어를 읽으면서 공자가 음악에 대해 그렇게 많은 말을 했다는 걸 새삼 알았고, 맹자는 말끝마다 고대의 음악책인 `시경`을 인용했다는 것도 다시 알았다.

`시경`은 기원 전 11세기부터 기원 전 6세기까지 불렸던 노래들을 모은 책이다. 공맹의 시대는 `시경`의 노래들이 불렸던 끝 무렵이자 노래 모음집으로서의 `시경`의 시대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공자가 이 `사무사(思無邪)의 노래들을 300여 편으로 선별정리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확실치 않고, 확실치 않다 하나 그 사실이 아예 허구인 것도 아니란다. 확증과 불확증의 경계에 있는 노래책의 배후는 그렇다 쳐도 공맹이 `시경`을 경전 중의 경전으로 받들었다는 사실만은 백지 위 먹자국처럼 또렷하다. `시경` 속 노래 중에 시인과 음악가, 그리고 성인의 풍모에 이르기까지 두루, 처음처럼 적용되는 상징어인 `절차탁마`에 대한 가사가 있다. `기수라 저 물 굽이굽이/푸른 대나무 우거졌네/어여쁘신 우리 임은/뼈와 상아 다듬은 듯/구슬과 돌을 갈고 간 듯/엄하고 너그럽고/환하고 의젓한 분/어여쁘신 우리 임을/끝내 잊지 못하겠네` 앞으로, 금강길 굽이굽이(90.5Mhz, 월-금 16:00)에서 기수물 굽이굽이, `시경`길 굽이굽이, 상상의 숲을 걸어다닐 생각으로 행복하다.

류달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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