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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끝·툇마루에도…알알이 맺힌 시인의 저항정신

2019-11-18기사 편집 2019-11-18 17: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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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근대문화유산 답사기] ⑬ 부여 신동엽 시인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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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신동엽 시인의 50주기가 되는 해이다. 신 시인은 부여를 빛낸 예술가로 칭송 받고 있으며 동시에 문명 비판적 기획자로서 한 시대의 문화적 준거 틀을 바꾸고 싶어 했던 저만의 사상을 가진 광의의 시인에 속한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에 이르렀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가 치열하게 떨쳐내고자 했던 껍데기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신동엽 시인의 시정신이 현재 진행형의 의미를 갖고 살아있는 이유다. 햇빛이 따사롭고 바람이 상쾌한 만추의 어느 좋은 가을날 그의 시 '껍데기는 가라'를 생각하며 신동엽 시인의 생가를 찾아 가 봤다.

◇알맹이 가득 찬 시인 신동엽(申東曄, 1930-1969)=생사를 넘나들던 6.25 전란 속에서 언제 대학에 다니고 언제 연애를 했는지, 제2공화국의 춘궁기와 절대 빈곤 속에서 어떻게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는지, 간암에 지쳐 숨지기까지 그는 한 번도 모국어의 세계를 떠나 본적이 없었다. 4.19의 현장에서 분노를 쏟아내고 한일 굴욕 회담 반대운동에 힘을 쏟으며 '껍데기는 가라'고 목청을 높였던 시인 신동엽은 이데올기화된 남도 북도 아닌 또 다른 세계를 꿈꾸었던 시인이다. 인생도 문학도 무르익을 나이 39세 11년 동안의 시인생활이 슬프게 막을 내렸다. 민중의 강렬한 저항의식을 시화(詩化)한 시인 신동엽은 1930년 이곳 부여에서 아버지 신연순과 어머니 김영희 사이에 1남 4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여초등학교와 전주사범학교, 단국대 사학과·건국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공주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서울 명성여자고등학교에서 작고할 때까지 재직했다. 1959년 장시 '이야기 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면서 문단에 나와 △껍데기는 가라 △금강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 민족문제와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명작을 발표해 우리나라 대표 민족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신동엽 시인이 낸 책으로는 △아사녀(1963) △신동엽 전집(1975)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79) △금강 (1989) △꽃같이 그대 쓰러진 등의 시집과 산문집 △젊은 시인의 사랑(1989)이 있다.

사진=이영민 기자
◇시인의 삶 오롯이 담긴 생가=신동엽 생가는 신 시인이 소년기부터 청년기를 보내며 심신을 갈고 닦은 곳이다. 부여군청에서 가까운 부여읍 신동엽길 12에 지난 2013년 개관한 신동엽 문학관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300여평에 이르는 생가에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舍廊) 바깥채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마당에는 잔디가 잘 정돈돼 있고 바깥채는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외부인이 들어가 볼 수가 없다. 안채는 부엌과 마루, 신동엽 시인이 사용한 방이 문이 열린 채 개방되어 나그네를 반긴다. 방안에는 책상으로 사용한 밥상 위에 밀집 모자와 책이 놓여있어 신 시인의 옛모습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금방이라도 신 시인이 나타나 시를 읊을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생가 오른쪽에는 시 구절을 새겨 넣은 시의 깃발이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며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부여 출신 임옥상 화백의 설치미술 시의깃발은 신동엽의 시가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다만 관광객들이 신동엽 시인을 떠올리며 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주변 정리와 시의깃발 설치 내력을 소개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시의 깃발 표지도 너무 적어 잘 보이지 않았다. 신동엽 시인의 생가는 시인이 어린 시절부터 결혼 이후까지 살았던 집과 터로 지난 2007년 7월 3일 등록문화재 제339호로 지정됐다. 1985년 5월 유족과 문인들에 의해 복원이 됐고 2003년 부여군에 기증됐다. 신 시인이 1930년에 태어나 식민지, 전쟁, 분단의 역정을 견뎌낸 개인의 족적은 물론 한때 생활고에 시달려 매각했다가 재매입해 오늘날의 신동엽 생가로 되살려온 과정을 보면 절로 감탄케 한다. 복원된 생가는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생가와 문학관은 부여군의 위탁을 받아 신동엽기념사업회(이사장 강형철 시인)가 관리하고 있다. 1970년 세워진 시비는 부여읍 동남리 금강변에, 1993년 11월 경기도 파주에서 이전한 묘소는 부여읍 능산리 왕릉 앞산에 각각 자리 하고 있다.

시의 깃발 사진=이영민 기자
◇부여의 3대 건축물 신동엽 문학관=신동엽 문학관은 오늘날 부여가 자랑하는 3대 건축물의 하나로 꼽힌다. 건축가 승효상은 신동엽의 시정신에 부합하는 조형물이 어떤 것이며 문학관이 갖추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를 건축예술로 펼쳐보였다. 최근 건축 전공 학도들의 주요답사 대상이 되고 있다. 건축물로도 손꼽히지만 속은 더 알차다. 신동엽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신동엽의 유물, 유품들은 그 주인이 굳이 훌륭한 시인이 아니었더라도 또 다른 생활사 박물관을 구성하게 할 만큼 완벽에 가까운 전시 자료를 보존하고 있다. 문학관에는 신동엽 시인의 생애가 '소년기(1930-1945)', '학창시절(1945-1949)', '한국전쟁(1950-1953)', '사랑과 결혼(1955)', '시인의길(1959)', '세상속으로(1960-1966)', '서사시 금강(1967-1969)', '추모기(1970년 이후)', '역사 속으로(1990년-현재)' 등으로 잘 정리돼 있다. 생가와 문학관에는 전국에서 연간 5000여명이 찾아 신동엽 시 세계를 탐구 하고 있다. 문학동아리부터 어르신,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많이 찾고 최근에는 중학생도 부쩍 늘었다는 게 신동엽기념사업회 김형수 상임이사의 설명이다. 김 이사는 "기념사업회는 신동엽 시인의 사상과 문학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면서 "학술연구, 도서발간, 전시, 각종 문화행사를 펼쳐 왔고 올해는 50주기를 맞아 더 활발히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기념사업회는 지난 1월 특별전 이영산 사진전을 시작으로 △신동엽 50주기 봄 학술대회 △전국 고교백일장 △풍자화로 보는 역사이야기 △교사 부여 인문기행 △신동엽의 문학기행-신동엽의 서울시대 △전국문학인대회 △유명화가들의 신동엽 시 그림전 △신동엽 50주기 가을 심포지엄 △금강 취재기 사진전 △신동엽 대표시 50선 도서 그림전 △이란순 도예전 △사비미술연구회 어울림전 △민경희 한국화전 △행복을 그리는 한국화 단체전 △신동엽 50주기 송년기획전 '저녁 빛 속에 길을 보았다' △ 송년음악회 등이 이미 행사를 진행했거나 앞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50주기 기념식은 지난 9월 28일 신동엽문학관 특설무대에서 열렸다. 당시 박정현 부여군수, 함세웅 신부, 이경자 한국작가협회 이사장, 신좌섭 신동엽 시인 장남 등이 참석해 신 시인의 업적을 기렸다. 특히 올해 신동엽산문전집,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 신동엽 평전-좋은 언어로, 이야기 하는 쟁기꾼의 대지 등이 출간돼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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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2신동엽 문학관 입구 사진=이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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