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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오늘도 평화가 적립됐습니다

2019-11-15기사 편집 2019-11-15 07: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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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장혜경 태안 삼성초등학교 교사
"선생님, 저희 아이 문제있나요?"

어느 날 오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사랑이(가명)의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이가 집에 와서 며칠째 친구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며 울고 있다고 한다. 올해 우리 반 첫 왕따 의심 사건이었다.

교사로 살아오는 동안 교과교육보다 더 어려운 것이 생활교육이었다. 세상살이에 원인 없는 결과 없듯이 이 일에도 시작이 있었다.

이 사건은 사랑이가 한 친구를 유독 좋아하면서 시작됐다. 학급에 여자 아이라곤 달랑 넷인데 사랑이는 그중 한 친구에게만 정성을 쏟았다. 선물의 양과 질에 호감도가 결정되는 아홉 살 여자아이들은 사랑이의 선물과 우정표현이 한 친구에게만 집중되는 것을 보며 부러움과 함께 무시당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랑이와 그 친구의 사이가 멀어지는 일이 생겨났다. 사랑이와 사이가 멀어진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가까워졌고 그동안 무시 받았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사랑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의도적으로 괴롭히거나 사랑이를 밀어내지 않았다. 하지만 기꺼이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랑이는 알고 있었다.

교사의 입으로 친구를 따돌리는 것이 나쁜 행동이라는 당위를 말하기 전에 아이들 스스로 서로의 상처를 읽고 공감해주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회복 서클을 열었다. 이유도 없이 거부당한다고 생각했던 사랑이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바뀌어야 함을 깨닫고 공평한 우정 나눔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자신들의 행동이 사랑이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그것이 우리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고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왕따 의심 사건은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훈훈하게 마무리 됐다.

그 일이 있고 두 달여 후 이번에는 아름이가 친구와 다투고 교실 구석에 우울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아이들은 아름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시끌벅적 놀이에 취해있었다. 그때 사랑이가 아름이에게 다가가서 뭐라 말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아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아름이의 반응에 당황하는 사랑이를 불러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었더니, 사랑이는 "괜찮아? 나랑 놀래?"라고 했단다.

나는 사랑이에게 "아름이는 예전에 너를 따돌렸었잖아. 밉지 않았어?"라고 물었고, 사랑이는 "미워요. 그런데 제가 혼자였을 때 다른 친구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노는 모습을 보면 저는 더 외롭고 슬펐어요. 아름이가 지금 그럴 것 같아서요"라고 말했다.

혹자는 교사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런 무거운 중압감을 가지고 살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평화로운 하루가 모여 나와 함께 하는 아이들의 일 년이 평화롭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갈등 전환을 위한 이야기 공간을 열어주고 서로의 말이 오해없이 전달되도록 번역해주며 하루치 평화의 적립을 위해 노력 중이다. 장혜경 태안 삼성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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