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태 태안소방서 근흥119안전센터장
김효태 태안소방서 근흥119안전센터장
10년 전 119구조대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그날은 땅거미가 내리고부터 해무가 순식간에 태안 전역을 뒤덮었다. 짙게 깔린 해무 때문에 전방 시야는 1m도 채 나오지 않았고, 그로인해 교통사고 출동벨이 정신없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짧은 시야 때문에 차량들이 속도를 내지 않아 인명피해가 크게 발생한 현장은 없었다. 현장을 빠르게 정리하고 차량에 탑승하여 소방서로 되돌아오는 중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번호를 보니 `119`, 또 어딘가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큰 사고가 아니길 빌며 전화를 받았다.

"119 상황실인데요. 태안 근흥면 용신리 해안에서 50대 남성이 해루질 하다가 방향을 잃고 바다에 고립된 상황으로 바닷물이 허리까지 차올라왔고, 정확한 해루질 진입지점은 타 지역에서 살아서 잘 모른다고 함, 신속 출동바랍니다."

전화 내용을 듣는 즉시 심각한 상황임을 인지했다. 현재 해무 때문에 소방차 속도를 40-50㎞ 밖에 낼 수 없는 상태였고 현장과의 거리가 약 15㎞인 것을 감안 한다면 현장도착시간이 30분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확한 지점을 모르는 상태이니 마음만 급해졌다. 상황실에 보트 및 해경지원 요청을 하고 현장으로 출발하면서 요구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전화를 받았고 들어간 방향을 물어물어 진입지점이 `원안해수욕장` 부근이란 걸 알아낼 수 있었지만 진입지점에서 2-3㎞가량 좌우로 걸어 다녀 본인 위치를 전혀 모른다고 했다. 560여㎞에 달하는 길고 복잡한 해안선을 가진 태안해안은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이처럼 밤바다에 고립되면 사방이 섬으로 둘러싸여져 있어 섬 곳곳에서 나오는 불빛 때문에 방향을 구별하기 어렵다.

현장 도착까지 10여분 정도 남아있는 상태에서 요구조자의 안전이 걱정이 된 나는 다시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확인했다. 요구조자는 "제발 살려 달라"는 말과 함께 바닷물이 벌써 목까지 차올라왔다고 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지금 최대한 빨리 가고 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달라"는 말 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고 전화기를 든 손을 보니 땀으로 흥건했다. 잠시 후 다행히 해경이 도착해서 해안수색을 실시한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나는 즉시 요구조자에게 크게 소리를 질러 위치를 알려달라고 할 요량으로 전화를 다시 걸었으나 통화음만 계속되고 전화는 받지 않았다.

곧 우리도 현장에 도착했고, 핸드폰이 물에 젖어 전화를 받을 수 없었을 거라는 한줄기 희망을 안고 해경과 구역을 나누어 밤샘 수색을 실시하였으나 다음날 새벽 육지에서 200m 가량 떨어진 해상에서 차갑게 식은 요구조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요구조자는 취미로 주말마다 해루질을 다녔고 잡은 해산물을 가족 및 지인들과 나누어 먹는 것을 무척 행복해 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해무가 짙게 끼는 날이면 내 손은 땀으로 흥건해 지곤 한다.

과연 해루질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위험한 걸까? 해루질은 예로부터 물 빠진 바다갯벌에서 어패류를 채취하는 행위로 주로 밤에 랜턴 등 불빛을 밝혀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 방식이다. 문제는 해루질 특성상 주로 밤을 이용하기 때문에 해무 등에 의한 방향 상실, 밀물 고립, 갯골 등에 의해 익수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해루질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선 구명조끼를 반드시 착용하고 구조를 요청할 때는 사고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앱(app) `해로드` 등을 설치해야 하며 물때를 숙지한 뒤 휴대전화 등에 알람을 설정하여 미리 바다에서 철수해야 한다. 또 지역 어민들이 출입을 위해 만들어 놓은 진입로를 이용하고 진입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은 출입하지 않으며 해루질은 지형을 잘 아는 사람과 함께 짝을 이뤄서 해야 한다. 지형을 아는 사람이 없다면 가고자하는 지형의 사전답사를 반드시 실시하여야 한다.

특히, 갯벌 특성상 발에 빠졌을 때 무작정 빼려하면 더 깊이 빠져 위험 할 수 있으니 이때 엎드리거나 뒤로 누워 양손을 사용하여 안정적 자세를 잡은 상태에서 탈출해야 한다. 언제나 우리에게 멋진 풍경과 재미있는 레저활동,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바다, 하지만 오랜 기간 바다 주변에서 생활 해보고 여러 지역의 바다를 다녀 봤지만 안전한 바다는 없었다. 해루질! 철저한 사전 준비와 안전사항만 지키면 즐거운 취미생활이지만 안전사항을 무시하면 목숨을 건 위험한 취미생활이 된다.

김효태 태안소방서 근흥119안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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