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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포럼] 출장비 규제의 허와 실

2019-11-05기사 편집 2019-11-05 08: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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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보전산실 공학박사
10여 년 전에 읽었던 책에 한 미국회사의 사례가 있다. 이 회사 직원들은 미국 전역으로 출장을 다녔다. 회사는 출장 후에 제출받은 영수증을 확인하고 그 금액만큼 직원에게 돈을 주는 '사후정산 방식'을 적용, 운영했다.

직원들은 출장비를 미리 받지 못하고 개인 돈으로 먼저 처리해야 하는 불편함과 영수증을 꼬박꼬박 챙겨야 하는 불편함을 이중으로 겪어야만 했다. 출장을 다녀오는 중에 영수증이라도 분실하면 정산하는 직원과 충돌이 발생하기 일쑤였다. 출장 갔던 직원들이 단지 영수증을 분실했다는 이유만으로 출장비를 정산받지 못해 억울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산 담당 직원 입장에서는 증빙 없이 돈을 지급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상적인 출장처리만으로도 업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을 확인한 회사는 정액지급 방식이라는 새로운 출장비 지급 방식을 도입한다. 출장갈 직원이 목적지를 정하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을 정액으로 선지급했다. 직원은 사비를 미리 써야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고, 영수증을 챙길 필요가 없어서 더욱 편리했다. 회사 측에서도 출장을 위해 지급하는 비용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며, 기존에 정산을 담당하던 직원 2명의 업무가 사라지면서 인건비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출장을 제대로 갔는지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면, 회사 전체적으로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사례로 매우 흥미로웠다.

국내에서는 출장비를 정액제로 선지급하는 공공기관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기관들이 정액지급방식과 실비정산방식을 비교분석하고, 점검할 인력을 추가로 고용할 수 없다는 이유 등을 따져봐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업무절차를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서 적은 인력으로 효율적인 체계를 구축하다 보니 저절로 출장비 지급 방식이 정액지급제로 정착됐던 것이다.

정액지급 방식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사람이 생겼다. 교통비는 정확히 들어맞는데, 숙박비에서는 남는 돈이 보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6만 원의 숙박비를 받았는데, 출장자가 최대한 싼 숙소를 알아봐서 3만 원에 숙박을 하고 남은 3만 원은 개인이 가지는 구조였던 것이다. 의문을 가졌던 사람은 3만 원을 아끼면 회사에 그만큼 이득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제를 도입해 예산을 절약할 수 있도록 실비정산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비정산이 옳다는 주장을 접하고는 예전에 읽었던 사례가 떠올라 관련 책을 검색했지만 찾지 못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전문가다. 경영학을 전공한 지인에게 물었더니, 대리인 이론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이 이론에 따르면 회사가 처리할 일에 대해 직원을 대리로 보내 그 업무를 수행케 하고, 여기에 필요한 비용을 회사가 지불한다. 대리인이 꼭 직원일 필요는 없고 다른 회사의 사람일 수도 있지만, 회사 출장일 경우 보통 회사직원을 대리인으로 한다. 회사의 비용지급 방식에 따라서 대리인의 경비 집행 행태가 달라진다. 경영학에서는 이에 대해 인간의 본성이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의 철학적 쟁점까지 고민을 이미 했던 것이다.

대리인 이론에 따르면 개인에게 숙박비를 선지급하면 개인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그 돈을 본인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아껴 쓴다. 반면 한도를 정해놓고 사후정산을 하면, 한도에 맞춰서 최대한 비용을 지출한다. 이를 인지상정으로 인정하고, 도덕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로 본 것이다. 결국 대리인 이론에 따르면 실비정산을 해도 절약할 수 있는 예산은 미미한 반면 추가 확인에 따른 인건비 및 개인의 영수증 처리에 드는 비용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규제는 꼭 필요하다. 단순 자본주의만으로는 약육강식의 정글체제를 만들 수 있기에, 규제를 만들어서 이를 제어해야만 한다. 다만 규제를 만들 때도 인간의 본성을 고민한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해 규제를 완성시킨다면, 엉뚱한 규제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지는 사태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해 만든 규제가 영수증을 챙기게 하고, 이를 감시하는 비용을 추가로 발생시켜 예산낭비를 초래한 것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용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보전산실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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