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현 대전시 보건환경원구원장
전재현 대전시 보건환경원구원장
미국인이 사랑하는 오토바이 회사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은 시장에서 혼다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의 공세에 밀려 점차 시장점유율이 떨어지자, 당시 유행하던 도요타의 경영기법을 벤치마킹하고자 임직원을 일본기업에 연수를 보냈다. 일본기업의 품질관리, 비용절감 및 노사관계 등에 대하여 배우고 적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1970년대 70%에 육박하던 시장점유율은 1980년에 28%까지 떨어졌고, 주가는 폭락했다. 할리-데이비슨이 자사 제품의 특성과 문화를 무시한 채 일률적으로 일본의 기업문화, 행동방식 및 제품특성이 반영된 경영전략을 모방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2015년 정부는 내수 진작을 위해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를 벤치마킹한 `코리아세일페스타`를 야심차게 도입했다. 본래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에서 11월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부터 연말까지 이어지는 세일기간인데, 이때 이루어지는 소비가 미국 연간소비의 20% 가량을 차지한다고 하고 일부 소매업체의 경우 연 매출의 70%를 판매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코리아세일페스타`는 무늬만 `블랙프라이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마다 참여업체는 늘었지만 매출은 감소하고 경제적 효과는 갈수록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의 겉모습만 따라했을 뿐 실질적 성공 요인인 미국 문화, 제조업체 중심의 할인행사, 민간의 자율적 참여 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벤치마킹은 후발주자가 앞서가는 상대의 강점을 배워 시행착오에 따른 비용과 리스크를 줄여 단기간에 따라잡는 전략으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업은 물론 자치단체 등에서도 무분별하게 쓰이면서 벤치마킹의 함정에 놓여지고 그 부작용 또한 심각하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벤치마킹은 언뜻 보기에 해결방안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실행하기도 용이한 혁신전략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함정에 빠지기 쉽고 성공하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기업 및 조직은 고유의 문화, 특성, 행동양식이 있다. 자신의 DNA를 어떻게 발현하느냐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단순히 따라 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류현진이 커쇼처럼 파워 피쳐(강속구 투수)가 되고 싶다고 따라 한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류현진은 역시 정교한 제구와 다양한 구종으로 승부해야 한다. 남을 따라 하다가는 오히려 상대의 지배를 공고히 하여 영원히 2인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은 벤치마킹에도 통한다.

벤치마킹의 또 다른 문제는 `레드 오션(Red Ocean)` 전략이라는 것이다. 벤치마킹은 따라 하기 쉽고 많은 사람이 선택하여 대세를 추종하는 전략이다. 어느 지역 축제가 대박이 났다고 하면 금세 유사한 축제가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어느 지역 관광 시설에 인파가 몰린다고 하면 다른 지역에 더 크고 강력한 시설이 들어선다. 그 결과 어느 지역에나 있는 흔한 축제, 시설이 되어 금세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벤치마킹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조직의 과제를 상대의 관점, 기준에 따라 재단함으로써 상대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조직에도 맞지 않으며 성과나 경쟁력에도 관련 없는 엉뚱한 요소를 모방하고 적용하느라 귀중한 자원 및 조직의 미래를 소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영원히 실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할리-데이비슨은 이후 전략을 수정하여 혼다나 도요타처럼 대량생산, 완전 자동화 시스템 중심이 아닌, 개별 마니아 고객 중심의 그들만의 장점을 살려 시장점유율을 다시 회복했다. `코리아세일페스타`도 올해부터는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행사를 추진한다고 한다. 벤치마킹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분별한 벤치마킹은 실패에 이르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상대의 강점을 창의적으로 발전시키는 창의적 벤치마킹이 필요하다.

전재현 대전시 보건환경원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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