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영 대전고등학교장
주진영 대전고등학교장
지난 봄, 1학년 명찰을 단 학생이 교장실로 들어왔다. 이 학생은 부탁드릴 일이 있어 왔다면서 학교에서 병아리를 키울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했다. 달걀을 부화시켜 병아리 몇 마리를 얻었는데, 이걸 학교에서 키우면서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혼자 하는 것이냐 물었더니 친구들하고 동아리를 구성했고 1학년 생물 교사가 지도교사를 맡아 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학교에 닭장을 지을만한 곳이 있느냐 물으니 야구장 끝자락에 적당한 공간이 있고 닭장을 짓는 것과 키우는 것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다고 했다. 너무나 기특한 생각이 들어 학생과 같이 공간을 확인하고 바로 허락했다.

그리고는 교직원 회의 때 이 학생의 사례를 얘기했다. 그리고 관심분야를 스스로 탐구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학생들을 적극 돕는 학교 풍토를 만들자고 부탁했다.

새로운 많은 동아리들이 구성되고, 수시로 다양한 활동이 전개됐다. 마음씨 고운 선생님께서 동아리 학생들이 요청하는 물품들을 다 수합해 구매를 요청하는 문서를 결재할 때가 가장 즐겁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필요한 소소한 물건들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값도 비싸지 않다. 정말로 소소한 물건들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구매해주는 일은 정말 귀찮은 일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선생님이 고맙다. 주말에도 동아리 체험을 위해 시간을 내어 동행해주는 선생님, 학생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참여시키려고 애쓰시는 선생님, 관악부나 합창부 등을 짬짬이 지도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있어 학교엔 웃음과 함성이 울려 퍼진다.

얼마 전 과학부장이 심각한 얼굴로 교장실에 들어왔다. 인근 아파트 주민으로부터 새벽닭 울음소리에 대한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야구장 끝자락에서 자란 병아리가 제법 큰 닭이 됐는데, 새벽마다 그 울음소리 때문에 단잠을 설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민원인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생각하면 새벽닭 울음소리가 정겹기도 할텐데 굳이 민원을 제기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일단은 닭장을 옮길 장소를 찾아봤다. 중학교와의 경계 부분에 적당한 공간이 눈에 들어와 거기로 옮겨놓았다.

며칠 후 제주도로 출발하는 수학여행단을 배웅하러 새벽에 학교에 나왔는데 새벽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정말 소리가 우렁찼다. 세 마리가 모두 수탉이어서 그 소리가 옛날 시골에서 듣던 그 소리보다 더 컸다. 민원이 있을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닭장이 기숙사에서 멀지 않아 사감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숙사에선 닭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느냐고. 다행히 창문을 닫고 지내서 소리가 크진 않다고 한다.

벌써 11월, 곡식과 과일도 영글었지만 아이들의 활동도 무르익었다. 동아리활동 등 많은 교육활동도 마무리 단계다. 닭을 키우며 관찰하는 연구도 11월까지 마친다고 한다. 기특한 녀석들의 연구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다만 봄부터 가을까지 꾸준히 모이를 주며 관찰하고 연구해온 아이들이 기특하다. 햇병아리로 들어온 신입생들이 의젓한 고등학생으로 자라 제법 발표도 잘하는 아이들로 자란 것이 기특하다. 해는 짧아지고 몸은 움츠러들지만 마음만은 뿌듯하다. 주진영 대전고등학교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