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우 공주대 교수
박순우 공주대 교수
우리 사회는 이원적이다. 국민소득은 세계 24위인데 행복수준은 54위에 불과하다. 행복수준은 1인당 국내총생산, 건강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타인에 대한 관대함, 정부와 사회의 부정부패 수준 등을 지표로 측정되는데 우리는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 자메이카와 유사하다. 경제발전 수준과 사회발전 수준이 불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성이 두드러진 곳이 노년의 삶이다.

하나의 예로 1959년에 출생해 올해 회갑을 맞이한 한 남성을 가정해 보자. 그는 시골의 유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 진학 대신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그렇더라도 이것이 미래를 설계하는데 장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고졸 학력으로도 정규직을 잡는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졸업 후 지방의 중견업체에 취업했으며, 20대 후반에 결혼해 30대 초반에 첫 아이를 맞이했다. 이 기간 동안 주택담보 대출을 통해 조그마한 아파트도 한 채 마련했다. 부부가 모두 직장을 다녔으니 자녀양육이나 대출금 상환 등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도 감당할 수 있었다. 독립되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겠다는 희망이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으로 그쳤다. 그는 만 40세가 되던 해에 외환위기의 여파로 직장을 잃었다. 양육할 아이가 있고 갚아야 할 대출금이 남았음에도 소득이 중단된 것이다. 당시에는 국민연금 일시반환제도가 있었고, 퇴직금도 있어 1-2년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다시 직장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이후 우리 경제는 제조업에서 3차 산업으로 체질이 전환되는 과정이었다. 과거 고등학교 시절 습득한 직업기술은 컴퓨터 및 IT 기반의 경제에서 새로운 정규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실직 후 20여 년을 기간제나 비정규직, 실업을 반복하는 생활로 살아왔다. 이제 회갑이니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개인적으로 저축해 놓은 목돈도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노후소득은 그동안 간헐적으로 기여하였던 국면연금뿐이다. 하지만 이는 내년부터 지급되며, 20만 원 안팎의 수준이다. 기초연금을 받으려면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 한 노인에 국한된 사례가 아닐 것이다. 59년생은 베이비부머 세대다. 이는 외환위기의 풍파 속에서 자식을 양육하고 부모를 부양해야 했던, 그러나 자신의 노후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노령에 접어드는 세대의 일반적 모습이다.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이라는 표현은 우리나라의 상당수 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되면 절반정도가 상대적 빈곤상태에 빠진다. 의학의 발전 등으로 기대수명은 늘어났지만 건강수명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17.5년 정도는 아픈 몸으로 살아야 한다. 사회적 관계망도 취약하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50세 이상 장·노년층의 사회적 관계망 비중은 60.9%로 OECD 평균(87.1%)에 크게 미치지 못하며, 조사한 33개국 중 가장 낮다. 이 문제는 특히 저학력의 남성 독거노인에게서 심각하다. 이렇다 보니 지난 5년여 동안 1 만 1000여 명의 고독사 사례 중 남성 독거노인이 48%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고난의 시작이다.

노후의 경제적 안정은 개인이 빈곤이나 질병,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자유롭거나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다. 최근 정부가 제시한 정년 연장의 카드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의 실현방법을 놓고 다양한 우려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2000년대 초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공공노조의 파업으로 철도, 공항 등 기간시설이 마비되는 사태가 있었다. 파업의 원인은 정년연장의 문제이었다. 정부는 연금제도의 안정을 위해 이 방법을 제시했지만, 은퇴와 여유로운 노후를 기대했던 근로자들이 강하게 저항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노년의 경제력에 대한 염려 때문에 정년 연장의 카드를 환영하는 것, 이원화된 한국사회의 아이러닉한 단면이다. 박순우 공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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