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회화란 현실세계를 재현하는 것이라는 서구의 오랜 통념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의 근대시기까지도 커다란 영향을 발휘했다. 가장 대표적인 일화는 아마도 고대 그리스의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간에 펼쳐진 드라마틱한 대결일 것이다.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두 화가는 누가 더 그림을 잘 그리는가를 놓고 경쟁했다.

어느 날, 이 둘은 누가 더 잘 그리느냐를 두고 일종의 시합을 했는데, 제욱시스는 자신이 그린 포도송이가 탐스런 포도나무 그림을 보여줬다. 이 때 여러 마리의 새가 진짜 포도송이로 알고 그림에 날아와 부딪혔다. 제욱시스는 의기양양하게 자연(새)의 눈을 속인 자신의 그림 솜씨를 뽐냈다. 그리고 그는, 휘장으로 덮인 파라시오스의 그림을 빨리 보자며 그림을 덮고 있는 휘장을 걷어 낼 것을 재촉했다. 그런데 바로 그 휘장이 파라시오스의 그림이었다! 제욱시스의 그림은 새, 즉 자연은 속였지만 파라시오스는 자연을 속인 뛰어난 화가의 눈을 속인 것이다. 이후 `좋은 미술은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라는 명제가 이천년 가까이 미술의 역사를 군림했다.

그러나 이 논쟁의 핵심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제욱시스의 포도송이와 파라시오스의 휘장 그림이 결국 포도송이도 휘장도 아닌 그저 `이미지`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진짜가 아닌 이미지였기에 새는 포도를 먹을 수 없었고 제욱시스는 휘장을 걷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미지`는 마치 `유령`과 같다. 껍질을 가졌으면서도 알맹이는 없고, 그 알맹이, 즉 실재가 없어서 그 존재와 정체는 모호한 유령 말이다. 순간적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우주의 모든 사건 혹은 자기 동일성이 없는 복제를 뜻하는 시뮬라크르(simulacrum)의 어원이 유령이고, 죽은 이의 얼굴 본을 뜬 밀랍 주조인 이마고(imago)가 이미지의 어원인 것을 떠올리면 이미지와 유령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현실과 현실의 문제를 다룬 영화 `매트릭스`(1999)에서,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가 속이 비어 표지만 남아 있는 장 보드리야르의 책 `시뮬라시옹`(1981)을 꺼내는 장면이 우리 기억 속에 선명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책은 책이되 읽어야 하는 내용은 텅빈 채 표지만 책인 책은 정말 책일 것일까. 마치 제욱시스의 포도송이와 파라시오스의 휘장 그림처럼, 내용 없이도 표지만으로 책일 수 있는 유령과 같은 `이미지`는 이렇게 늘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이런 `이미지`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다. 전쟁과 테러, 재해와 가난, 이주와 실향이라는 전지구적 난제와 해결되지 않는 동시대의 도시, 국가 등이 껴안고 있는 문제나 위기는, 보는 이 혹은 사회의 관점과 시선에 따라 현실 혹은 실재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탄생하여 우리와 우리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소비된다. 결국 실재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를 대체하고 현실에 선행하는 이미지들은 `유령`과 같이 껍질을 가졌으면서도 알맹이는 없고, 사건처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에 애초에 어떠한 힘과 위력을 지녔는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근래,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유령 같은 이미지들의 둘러싸인 우리 현실이 새삼 두렵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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