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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충청의 오늘]언론대책 문건사건

2019-10-28 기사
편집 2019-10-28 08:25:27
 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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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1999년 10월 27일자 대전일보


20년 전인 10월 말과 11월은 언론대책 문건사건으로 시끄러웠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정부가 언론장악을 시도했다며 청와대 정무수석이 언론대책보고서를 작성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주장을 제기, 파장을 몰고왔다. 이와 관련해 김대중 대통령은 언론대책 문건 파문과 관련해 "(그 문건을) 전혀 보고받은 적이 없다"며 "나는 (문건에 있는) 그런 언론정책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후 하룻밤을 자고 나면 새로운 사실이 불거져 나와 국민들의 관심이 컸다. 여야는 언론대책 문건에 대해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해 새국면에 접어들었다.

1999년 10월 30일자 대전일보
1999년 10월 27일 김종필 국무총리는 충청지역민들의 숙원의 하나인 조흥은행 본점 대전 이전과 관련 빠른 시일 내 조흥은행 본점이 대전에 이전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조흥은행이 공식 발표한지 1년 가까이 되었는데 본격화되고 있지 않아 서둘러야 한다는 지역민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화이글스가 창단 14년 만에 첫 우승을 거둬 열기가 뜨거웠다. 한화는 1999년 10월 29일 잠실구장에서 롯데와 펼친 99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4대 3으로 창단 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빙그레 시절인 88·89·91·92시즌 등 4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패배의 쓴잔을 마셨던 한화는 5번째 도전만에 우승을 달성했다.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이 전격 사퇴했다. 1999년 11월 1일 대우는 김 회장 등 대우 핵심계열사 사장단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기업경영에 대한 책임때문에 물러난 것인데 당시 샐러리맨의 우상이었던 김 회장의 사퇴는 한국 기업경영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1999년 11월 5일자 대전일보.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11월 4일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대덕연구단지와 정부출연연구기관은 21세기 지식기반시대의 핵심자산"이라며 "국가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과기자문회의는 보고에서 대덕연구단지 활성화를 위한 첨단과학산업특구 설치법 제정과 우수영재 발굴 및 육성을 위한 무학년제 영재학교 설립을 건의했다. 대덕연구단지는 과학기술정책 일관성 결여와 정책개발 방향에 대한 정확한 인식 부족 등을 이유로 위상이 흔들리며 과학특구 지정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1999년 11월 1일자 대전일보.
한편 대전일보는 1999년 11월 1일자부터 제호 서체를 바꿨다. 기존의 한글 대신 한자로 된 옛 제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제호는 1997년까지 사용됐던 것으로 고 청남 오제봉 선생의 작품이다. 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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