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목포는 기차역에 발을 내리는 순간부터 비릿하다. 아주 오래전 와봤던 목포는 콧속으로 훅하고 들어왔던 비릿한 냄새로 기억난다. 어린 시절 섬마을에 산 기억 때문일까 비릿한 내음이 나는 항구도시와 바닷가 마을은 늘 마음을 끈다. 며칠 전 일로 인해 목포를 다녀왔다, 오랜만에 마주한 목포는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이 원도심의 공간 이어서일까 항구도시로 매력을 느꼈던 예전과 달리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목포의 원도심으로 저절로 걸음이 옮겨졌다.

유달산 아름다운 언덕에 자리한 일제강점기 일본영사관 건물은 견고했다. 목포 개항 이후 1900년에 지어져 현재는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건립 당시의 내외관이 그대로 유지돼 있다.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의 상징적 건물의 존재의 형식이 과거의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단순한 근대 건축물로서가 아니라 현재의 시점으로 과거가 호출된다. 옛 일본 영사관 건물 내부에서 밖을 보던지, 아니면 건물 외부에서 보던지 간에, 항만을 향해 내려다본 거리는 백여 년 전 일제가 내려다봤을 시가지가 연상돼 순간 소름이 돋았다. 목포근대역사관(옛 일본영사관) 내의 전시장 유리관에 배치되고 진열되어있는 자료와 역사적 대상들보다 옛 일본영사관의 위치와 그 시야가 전해주는 충격과 울림이 더 컸다. 일제의 식민지배의 감시의 시선이 공기에 퍼져있었을 것 같은 백여 년 전 그 역사의 시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근대문화유산들이 현재에까지 존재하는 가치는 우리에게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는 집단의 기억을 자극하고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침반 하나로 낯선 숲을 탐험 하듯 지도를 들고 시대극 세트장 같은 목포의 근대역사공간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과정 속에,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생겨난 미로와 같은 목포의 골목들은 근현대를 관통하는 목포의 역사와 삶의 흔적들을 느끼게 했다.

도시-얼굴은 많은 세월을 담고 있다. 굳이 발화하여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삶의 주름들처럼. 이틀여의 열 시간의 걸음으로 한도시의 얼굴을 알 수는 없지만, 목포는 할 말 많은 얼굴이다. 말이 터져 나올 듯 말 듯,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알려진 대로 개항문화거리를 중심으로 목포도 도시재생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목포의 이 근대문화거리의 재생은 어떻게 이루어질지 앞으로가 사뭇 궁금하다.

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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