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근대문화유산 답사기] ⑨ 논산 강경

구 강경성결교회예배당 사진=강경역사문화연구원 제공
구 강경성결교회예배당 사진=강경역사문화연구원 제공
금강 하류에 위치한 강경은 강경포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부귀영화를 누렸다. 일찍이 불교, 유교,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문화가 함께 발달해 상업은 물론 교육의 메카가 됐다. 조선시대 양대 포구(강경, 원산)와 3대 시장(평양, 강경, 대구)의 하나로 서해의 각종 해산물이 수산물 최다 시장인 강경으로 들어와 전국 각지로 공급됐다. 남일당, 강경성결교회, 강경성당, 강경노동조합,한일은행 강경지점,화교학교 교사 ·사택, 강경갑문,채운 배수지등 수없이 많은 근대문화유산들이 옛모습을 간직하고 그대로 남아있어 나그네들의 발길을 유혹 하고 있다. 논산시도 근대문화유산 보고인 강경을 널리 알리고자 강경 근대문화역사 거리 조성에 한창이라 볼거리는 더욱 풍부해질 전망이다.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 73번길 8)=강경북옥감리교회는 정방형의 평면을 취함에 따라 다소 전통적인 비례체계를 벗어나 있지만, 기능에 따른 평면 구성과 상부의 가구구조는 기독교의 토착화 과정에 나타난 한옥교회 건축방법의 특징적 요소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목재의 치목수법과 가구기법은 전통적 기법에서 근대화에 따른 기술적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내부를 살펴보면 크게 강단과 예배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4칸 규모로 정면과 측면의 비가 거의 1:1인 정방형의 평면이다. 전통 목조 건축은 목가구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하여 대개 도리방향을 보방향보다 길게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건물은 정방형 평면을 기본으로 북측 중앙부를 반 칸이 조금 넘게 뒤로 물려 강단부를 만들어서 진입에 따른 공간의 깊이를 확보하였으며, 예배기능에 부합토록 되어있다. 아울러 예배당을 출입할 수 있는 2개의 문을 내어 놓았는데 이것은 남녀유별의 유교적 유풍에 따라 남녀의 출입을 구분하는 `칸막고 교회형식(제단을 중심으로 천을 대어 남녀를 구분하기 위한 초기 교회의 형태)`을 취한 것이다. 강경북옥감리교회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한국초기 기독교 토착화 시대의 개척교회적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신부·목사가 대부분 서양인이기 때문에 한식에 익숙해 있지 못해 불편함을 갖게 되고 또 일부 신도들 중에는 서양식 건물을 동경하는 신도들도 있었기 때문에 조적조 건물로 높이 올라가는 서양식 예배당이 지어지기 시작하던 상황에서 비교적 한옥교회로서의 명맥을 고수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초기의 한옥교회는 대부분 소멸되거나, 개축 또는 새로이 신축되어 현존하는 한옥교회는 극히 드물며, 특히 감리교회로 남아 있는 것으로서 더욱 그 희소적 가치가 크다.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논산시 강경읍 계백로167번길 50)=한일은행 강경지점 건물은 붉은 벽돌조의 단층 건물로 대지면적은 978.83㎡이고, 대지 중앙에 본관 건물이 전면 도로와 면해서 위치하고, 좌측은 공터, 우측은 부속동과 증축된 상가건물과 연접하여 재래시장과 맞닿아 있으며, 본관 뒤쪽으로 단층 주택이 본관과 연결되어 있다. 본관은 282.99㎡의 단층 건물로 르네상스풍 절충주의양식으로 서양 고전건축에서 보여지는 베이스, 샤프트, 캐피탈의 요소를 갖춘 기둥과 에타블레이쳐로 구성된 정면은 테라스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준다. 기능과 관련된 연혁을 보면 한일은행 강경지점 → 동일은행 강경지점 → 조흥은행 강경지점 → 충청은행 → 사유건물(중앙도서관) → 젓갈창고 → 논산시매입으로 공공시설물로 활용되고 있다.

△강경성당(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27번길 13-3)=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이다. 강경성당은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정신으로 지역 사회를 복음화시키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에 동참하도록 빛과 소금의 역할을 지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강경 지역이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1883년의 일이다. 천주교 대전교구 통계자료집에 의하면, 1883년 당시 충청도 지역을 관장하던 두세 신부(Doucet, 한국명 정가미(丁加彌))가 설립한 공소 중 강경공소가 있었으며, 당시 교우는 131명이었다. 강경 지역은 이후 공소로서 존재하다가 1897년부터 전라도 지역의 화산본당(일명 나바위본당)이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를 모시면서 본당으로 승격하자 화산본당에 소속되었다. 1899년에는 강경포 교안사건을 겪으면서 강경 지역의 교세가 신장되기 시작하였다. 1911년 한국천주교회의 교세 확장에 따라 조선대목구가 전라도와 경상도를 관할하는 대구대목구와 기타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대목구로 분리되면서 강경공소는 행정구역상 서울대목구에 속하였으나 본당은 대구대목구에 속하는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갈등은 1921년 화산본당에서 논산본당(현 부창동성당)이 분리되면서 해결되었다. 1945년에는 논산본당에서 강경성당이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5년 8월 25일 등록문화재 제650호로 등록되었다. 현재 강경성당은 성모성심에 봉헌되었고 부속기관으로는 성모유치원이 있다. 현재 주임신부는 여준구가 맡고 있으며, 관할 구역은 강경읍 12개 리와 성동면 일부, 부여군 세도면, 석성면,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일부이다.

△구 강경노동조합(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27번길 30-5)=1925년 강경노동조합 초대 조합장이었던 정흥섭이 중심이 되어 지은 건물이다. 원래는 한식 목구조 2층으로 지었으나 관리 소홀로 2층 일부가 무너져 내려 현재는 일본 목구조 양식을 띤 1층만 남아 있다. 전체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현관은 정면 중앙에 돌출된 작은 지붕으로 포치를 구성하고 있다. 준공 당시에는 1층 전체를 개방하여 사무공간으로 사용하였고 2층에는 방이 2개 있었으며, 현관으로 들어서서 왼쪽 벽면에 직선 처리한 계단이 있었다. 근대기에 상업이 번성했던 강경에서 노동조합 건물로 사용했던 곳으로 노동사적 가치가 있다. 또한 이 지역 근대 상권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 건물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염천리 20번지에 있다.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 (논산시 강경읍 계백로 220)=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에 있는 옛 강경공립상업학교의 관사 건물이다. 2007년 4월 30일 등록문화재 제322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교육감 소유이다. 1920년 강경면영간이농업학교를 강경공립상업학교로 인가한 후 1925년 5년제 갑종 상업학교로 승격한 강경공립상업학교의 교장 관사 건물이다. 현재 교명은 강경상업정보고등학교이다. 1931년에 일본 목조 쇼인즈쿠리(書院造) 형식을 근대적 재료인 벽돌조로 바꾸어 지은 건물로 높은 박공지붕이 내려오면서 이어내림지붕 형태로 늘어진 것이 특징이다. 석재 마감 포치를 사용한 입구 등 외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1920~1930년대에 주택에 근대적 기술을 적용한 형태를 보여주는 건물로 근대 주택사적 가치가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남교리 1번지에 있다.

◇ 윤석일 (사)강경역사문화연구원장 인터뷰

가을 햇살이 따사로운 낮시간에 구 강경 노동조합에서 윤석일 원장을 만나 강경의 근대역사문화유적에 대해 들어봤다.

윤석일 원장은 "강경은 1845년 김대건 신부가 서품을 받고 들어와 구순오의 집에 유숙하는 등 기독교 선진지이자 도지정문화재 5곳, 등록문화재 10곳, 향토유적 4곳이 남아있는 근대문화 발상지"라며 "3대 시장 2대포구로 근대상업도시로 발전해 온 최고의 근대역사,문화의 명품도시 강경을 이룩하기 위해 강경역사문화를 발굴 하고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원장은 "식산은행, 한일은행, 강경금융조합 등 근대 금융관련 13개 기관이 설치돼 강경이 상업도시임을 증명하고 있다"며 "특히 강경은 일찍이 중국과 일본과 교역으로 국제도시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898년 논산최초 근대식 한남학당과 1904년 사립 황산창흥학교, 1905년 사립 보명학교,일본인 심상소학교,1908년 사립 만동학교, 1921년 황금정 유치원, 1920년 강경공립상업학교 등이 강경의 교육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는 볼거리라고 소개했다.

이영민·조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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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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