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SNS의 바다에서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다고 발표한 제품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 정부의 대응 방식은 괜찮은 건지. 무엇보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으며, 그 이면에 얼마나 뿌리 깊은 한일 갈등의 요소가 숨어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전한 지식뿐 아니라 거기에 내재된 의식이나 가치관도 함께 흡수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접속한 매체는 모두 내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SNS에서 공급되는 정보의 편향성은 우리가 그동안 접해왔던 공중파 채널과는 비교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중립적이어야 할 도덕적 규범이 적용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방송을 할 뿐이니, 보는 사람도 제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보면 그만인 것이다. 이러한 편향성을 피해 보자는 생각에서 영화 `주전장`을 보았고, 도서관에서 `국화와 칼`을 빌려보기도 했다.
`주전장`은 일본계 미국인인 미키 데자키가 제작한 영화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일본의 수술규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주전장`이 의미 있는 이유는 수출규제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일본 전범 기업의 한국인 강제동원 문제는 종군위안부 문제와 같은 맥락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주전장`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에게 가지고 있는 왜곡된 시각과 자신들의 침략역사를 직면하지도 교육하지도 않는 일본의 속내를 잘 드러내 주고 있었다.
`국화와 칼`은 미국이 일본을 함락시키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일본인 고유의 문화와 성격을 연구한 기록물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우리 국민의 분노와 저항의식에 충분히 공감했고 함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간간이 의도치 않게 보고 들은 다른 이야기들. 일본은 우리보다 힘이 세. 그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는 망할 거야. 이 정부의 오판을 막아야 해. 같은 말들은 가슴 속에 알 수 없는 불안과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오랜 기간 가슴속에 심어져 온 습관화된 공포라는 걸 깨달았다.
나의 부모세대는 한 세기에 걸친 이 땅의 시련기를 살면서 견디기 힘든 고통과 공포를 몸으로 체득한 이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공포를 답습해 왔다, 또 그 공포를 이용해 국민을 길들였던 정권하에서 반세기를 살았다. 어쩌면 거친 손에 태극기를 들고나와 구호를 외치는 이들은 진심으로 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엄혹한 시절에도 온몸을 내던져 불의와 맞서 싸웠던 선인들이 있어서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다. 아직도 어리석은 위기의 습관을 벗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는 건 그분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닐까.이예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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