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나를 성장시키는 힘

이수원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응급실 파트장.
이수원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응급실 파트장.
간호사 유니폼을 입고 처음 응급실에 발을 내딛던 그 순간의 설렘과 떨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병원 특유의 약품 냄새와 여기저기 울려대는 기계 알람 소리, 서로 먼저 봐 달라 재촉하며 소리 치는 환자들의 아우성.

그 속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는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 그 모습을 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나의 설렘은 두려움으로 변했다. 그게 벌써 15년 전 얘기다.

나는 15년차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의 응급실 간호사다. 학생간호사 시절 간호사가 되면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응급실 실습을 하고 나서는 정말 모든 과를 아울러야만 하는 응급실의 특성과 분위기에 기가 죽어 `내가 갈 곳은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희망 근무 부서로 응급실을 1지망으로 지원했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이브닝 근무를 하던 날이었다.

근무 중 119 상황실에서 연락이 왔다. 혈압과 맥박이 없는 오토바이 교통사고 환자를 이송 중이니 응급실에서 준비를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곧이어 환자가 도착했고 응급실의 모든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20대로 추정되는 환자는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가다 트럭과 충돌했고 몇 미터 튕겨나간 상태라고 했다.

환자의 몸 곳곳에는 골절이 육안으로 보였고 머리와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심폐소생술과 응급처치에 최선을 다한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맥박은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온 가족들은 환자의 상태를 알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제발 살려 달라`며 애원했지만 그 환자는 결국 사망했다.

미처 사망한 환자의 죽음을 애도할 틈도 없이 또 다른 젊은 환자가 응급실로 들어왔다. 이 환자는 최근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하며 방에서 나오지 않아 확인해보니 수면제가 방바닥에 흩어져 있는 상태로 발견돼 응급실에 실려 온 것이었다.

다행히 수면제를 먹은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위 세척 후 의식이 돌아왔다. 하지만 의료진의 치료와 상담을 거부하며 `죽고 싶은데 맘대로 죽을 수도 없냐`며 무조건 집에 가겠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제발 살려 달라 울부짖는 환자 보호자를 외면해야만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죽고 싶다는 환자를 살려내야만 했다.

그 날의 기억은 또래보다 일찍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됐다. 아마도 신앙의 힘과 동료들의 지지가 없었더라면, 쉽게 마음을 잡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에도 어려운 상황들이 나의 간호사로서의 신념과 가치관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나는 한 뼘 더 성숙해진 것 같다.

응급실에서 수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보며 간접적으로 여러 경험을 하게 된다. 가족애가 넘치는 환자, 보호자와 환자가 서로 미워하고 남보다 못한 가족들, 그들의 태도와 심정들을 헤아려보며 많은 인생 경험과 그 속에서 인생교육도 받는 그런 곳. 그곳이 응급실이다.

이 같은 인생수업을 받고 있는 나는 누구보다 축복받은 응급실 간호사다.

이수원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응급실 파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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