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지원하는 시리아 무장조직이 쿠르드족과 전투하고 있다.[AFP=연합뉴스]
터키가 지원하는 시리아 무장조직이 쿠르드족과 전투하고 있다.[AFP=연합뉴스]
터키군이 시리아 북동부 지역의 쿠르드족 퇴치 군사작전을 엿새째 이어가며 시리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14일(이하 현지 시간) 시리아인권관측소는 터키군 전투기가 민간인 호송차를 폭파해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 25만 여명이 거리로 내몰렸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번 공격에 대해 “자국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으나 민간인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작전을 야기하고 동의 혹은 묵인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미국도 국제사회를 의식한 듯 즉각 반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터키 철강 관세 50% 인상과 더불어 1000억 달러(약 118조원) 규모의 터키 무역 거래 협상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미국 재무부는 성명을 내고 터키 군사공격과 관련해 터키 정부 2개 부처와 3명의 터키 내각 각료에 제재를 부과했다.

EU 소속 국가들이 공격 중단을 촉구하고 전력 열세에 몰린 쿠르드족이 한때 적대관계에 있던 시리아와 손을 잡는 등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빠르게 돌아간 시리아의 정세를 정리해봤다.

◇ 터키의 시리아 북부 공격, 왜 시작됐는가

지난 9일 터키군은 ‘평화의 샘 작전(Operation Peace Spring)’을 개시하며 시리아 북동부를 장악하고 있는 쿠르드족 격퇴에 나섰다.

쿠르드족은 2011년 시리아 내전 때부터 이 지역의 사실상 자치를 누리며 민병대를 조직해 미국과 동맹을 맺고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러나 터키는 쿠르드민병대를 국내 분리주의 테러조직인 쿠르드노동자당의 분파이자 위협이 될 존재로 인식하고 있어 지난 연말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한단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이들을 격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지난 8월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와 시리아 북동부 접경지역에 안전지대를 설치하는 것을 제안했고 터키도 이를 받아들였지만 규모나 관리 주체 등을 놓고 양국간 불협화음이 이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9월 말까지 협상이 완료되지 않을 경우 무력으로 쿠르드민병대를 소탕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고 언제든 군사 작전을 개시하겠단 뜻을 피력해왔다.

결국 지난 6일 미 백악관은 “터키가 시리아 북부 군사작전을 추진할 것”이며 “미군은 그 작전에 지원도 개입도 하지 않고 인접 지역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미국이 IS 소탕작전에 함께 피를 흘려온 쿠르드 전사들을 ‘토사구팽’하고 대량 학살 가능성에 노출시켰다는 비난을 불러왔다.

7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비난에 “쿠르드족은 우리와 함께 싸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돈과 장비를 지급받았다”며 “우리는 우리의 이익이 되는 곳에서 싸울 것이며 오직 이기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국제사회를 의식한 듯 “만약 터키가 도를 넘는다면 그들의 경제를 완전 파괴시킬 것”이라고 엄포했지만 다음날 푸아트 옥타이 터키 부통령은 “터키는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국가 안보를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대응했다.

결국 미국이 개입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지 사흘 뒤 시리아 북동부는 전란에 휩싸이게 됐다.

미국이 빠진 상황에서 전력이 현저하게 하락한 쿠르드 민병대는 터키에 대항하기 위해 13일 한때 적대관계에 있던 시리아와 동맹을 맺기로 한다.

이에 따라 시리아 내전 이후 접근하지 못하고 있던 북부지역에 알아사드 정권이 다시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사실상 시리아가 이번 내전의 ‘최대수혜자’가 됐단 분석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 나라 없는 쿠르드족의 설움

쿠르드족은 공식 국가가 없는 소수민족이다. 현재 2500만-3000만명 정도가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미국 등에 퍼져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중 터키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터키 인구 중 쿠르드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20%에 달한다.

쿠르드족이 서방 강대국에 이용·배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20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과 동맹국이 서명한 세브르 조약에는 쿠르드족의 독립국을 보장한단 내용이 들어있지만 3년 뒤 서방국들은 이 약속을 팽개쳐 버린다.

독립국을 가질 수 있단 믿음으로 쿠르드족은 서방국들과 함께 맞서 싸웠지만 이들의 꿈을 이때도 좌절돼 버린다.

◇ ISIS 공포 다시 시작되나

쿠르드족과 아랍군이 소속된 시리아민주군은 미국, 영국, 프랑스군의 지원으로 지난 3월 ISIS를 격퇴하고 시리아 동부를 해방시켰다.

그 과정에서 포로로 잡은 수천 명의 ISIS 대원들과 그 가족들을 억류하고 있던 SDF지만 이번 터키군의 공격으로 인해 세력이 약해지는 틈을 타 ISIS가 다시 부활할 수 있단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돼 13일 로이터 통신과 AFP 통신 등은 쿠르드족이 관리하고 있단 IS 억류 캠프에서 785명이 탈출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시리아 곳곳에서 ISIS 활동이 재개되려고 하는 움직임도 포착됐지만 터키군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는 쿠르드족이 얼마나 이들을 저지할 수 있을지는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열악한 상황에 내몰린 쿠르드족이 시리아와 동맹을 맺고 미국도 제재를 가하면서 앞으로의 전세가 뒤집힐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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