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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이남 최초 교회…초기 선교·독립운동 구심점

2019-10-14기사 편집 2019-10-14 15: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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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근대문화유산 답사기] ⑧ 공주 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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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내로 들어가 공주시청 쪽으로 가다보면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충남지역 최초의 교회인 공주제일교회를 만날 수 있다. 대전에서 승용차로 40분 내외면 닿을 수 있다. 기독교 역사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과 관련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공주제일교회는 등록문화재 제472호로 건립 시기는 1931년이지만 양식은 19세기 말의 한국 초기 교회 양식을 띠고 있다. 한국전쟁 때 상당 부분 피해를 입었지만 신축 대신 복원을 택해 건립 당시 시대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증축 당시 장식된 화가 이남규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로마시대의 카타콤을 연상시키는 반지하층의 개인 기도실 등은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공주제일교회의 태동

공주제일교회는 수원이남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첫 감리교회이다. 1892년 미감리회는 서울 이남 지역을 수원·공주구역으로 정하여 공주를 충청도 선교 거점으로 확보하려는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고, 1893년에는 전도인 유치겸을 공주에 두 번이나 보내기도 했다. 1896년에 수원·공주구역 관리자로 임명받은 스크랜톤(W. B. Scranton) 선교사가 공주지역의 선교여행을 시작하였고, 1898년 가을에 수원·공주구역 관리자로 임명받았던 스웨러(W. C. Swearer) 선교사가 1899년 미감리회 연회록 임명기에 공주지역의 선교 내용을 보고하였다. 스웨러 선교사는 스테드맨 선교사의 철수 이후 공주에서 사역할 조사를 구하여 1902년 가을 김동현 전도사를 파송하여 관찰부(현 반죽동) 앞에 집을 사서 주재하며 전도 활동을 펼치도록 하여 공주제일교회를 개척토록 했다. 또한 1903년 원산에서 활동하고 있던 의료 선교사 맥길(William. B. Mcgill)과 이용주 전도사가 와서 하리동(현 옥룡동)에 초가 2동을 구입하고 전도활동을 펼쳤는데, 초가 하나는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또 다른 하나는 진료소 및 교육시설로 사용하면서 본격적인 선교사역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교인으로는 김상문, 유월나, 베리백가, 백정운 부부 등이었다. 공주의 선교사업은 1904년 샤프 선교사 부부가 공주에 오면서 더욱 활성화 되었다. 1904년 남편 샤프(Robert Arther Sharp)는 윤성렬을 교사로 하여 명선학당(영명남학교)를 설립했고, 그의 아내 샤프(史愛利施, Mrs. Alice H. Sharp)는 허조셉 전도부인을 교사로 하여 두 명의 학생을 가지고 명선여학당(영명여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선교사 샤프가 순회전도여행을 하던 중 발진티푸스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1906년 선교사 우리암(William Earl Cranton Williams)이 공주로 와서 영명학교(永明學校, 영명고등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했다. 샤프 여사는 유관순 열사를 수양딸로 삼아 영명학교에 입학시켰고 또 3·1만세운동도 지원했다. 공주제일교회는 충청지역 3.1만세운동의 진원지였다.

1906년 11월 이후 스웨러 선교사 부부, 윌리엄즈 선교사 부부, 케이블 선교사 부부, 테일러(C. Taylor) 선교사 부부, 번스커스(James Dale Van Buskirk) 의료 선교사 부부 등이 공주에 주재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전도·교육·의료활동을 전개하여 공주는 충청도의 선교 거점으로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공주제일교회 건축 특징

문화재로 등록된 공주제일교회의 건물은 1931년에 건립되었다. 이 건물은 태평양 전쟁기간인 1941년 일제에 의해 적산으로 분류되어 교회출입조차 한동안 통제되기도 했다. 6·25전쟁(1950-53년) 때 예배당건물이 폭격으로 상당 부분 파손되었으나 다행히도 건물의 벽체와 굴뚝 등이 그대로 보존되었다. 전쟁 직후인 1953년에 교인들이 파손된 예배당을 헐고 새로 짓자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파손된 부분을 다시 수리하여 복원하자는 의견이 채택되었고, 이에 1956년에 교인들이 교회 건물을 복원했다. 예배당 건물 이외에도, 공주제일교회는 매우 가치가 높은 사료(史料)와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교회 종탑, 붓으로 쓴 당회 회의록, 선교사들이 작성한 영문 소식지 등를 교회가 보존하고 있다. 공주제일교회 예배당은 1931년 지상 2층의 붉은 벽돌로 건립되었는데, 6·25전쟁 때 일부분 파손되기는 했어도, 건축당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교회 전면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의 개척자인 고 이남규 화백의 초기 작품으로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다는 의미에서 도안되었는데, 성부 창조주 하나님은 빛, 성자는 종려나무, 성령은 비둘기와 빨간 성령의 불로 상징화했다.

고 이남규 화백은 대전 출신으로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대전의 한 중학교에 미술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한국에 유리화를 소개하고 발전시켰고 공주사범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작고할 때까지 수천 점의 회화 작품과 수백 점의 유리화 작품을 남겼다.

△공주제일교회가 갖는 의의 및 평가

지상 2층 붉은 벽돌의 예배당은 근대 종교(기독교) 건축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고, 또한 이 교회가 운영했던 근대 병원과 신식 학교는 지역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개신교 건물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우가 흔치 않는데, 현재(2011년) 여수 애향교회와 목포 중앙교회가 공주제일교회와 나란히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애향교회는 1934년경 울진 읍성의 병영건물을 매입 해체하여 재조립한 기와형태의 건물이고, 중앙교회는 1930년대 초반에 지어진 일본 진종 대곡파 불교 사찰로 해방이후 교회로 전용한 건물이다. 이로 보건대 처음부터 교회로 건축되어 현재까지 보존되고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건물은 공주제일교회(감리회)가 유일하다. 양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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