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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춘추] 용서와 사랑이 필요한 시대

2019-10-11기사 편집 2019-10-11 07: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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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박세아 시인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억울하고 황망한 사건이 있었다. 가이거라는 여자 경찰이 퇴근 하던 중 남자 친구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자신의 집(3층) 인줄 알고 다른 집(4층)에 있는 흑인 이웃 보탐을 총으로 쏴 죽인일이 발생하였다. 검찰이 28년을 구형했고 배심원단이 무기징역인 최대의 99년형 까지도 가능했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낮은 징역 10년을 선고 했다. 법정에 모인 시민들은 실망감과 분노를 표출했다. 인종차별 이라는 야유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증인석에 앉아 있던 보탐의 동생 브랜트 진이 입을 뗐다. 브렌트는 눈물을 머금은 채 형을 죽인 원수를 바라보며 "저는 당신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당신이 감옥에 가는 일도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만 빌어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형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라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남은 삶은 그리스도에게 헌신해달라고 당부했다. 브랜트가 내민 용서의 손길은 기적으로 이어졌다. 브랜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게 가능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그를 한 번 안아줄 수 있을까요?"라고 판사에게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허락했다. 울고 있던 가이거는 앞으로 걸어 나와 브랜트를 향해 팔을 벌렸다. 한참을 포옹하며 대화를 주고받았고, 가이거의 흐느낌이 법정을 가득 채웠다. 시민들이 흐느끼고 오열하는 소리가 이어졌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판사마저 말 없이 눈물을 흘렸다.

공자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려움당한 자를 구제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인(仁)의 경지를 넘어선 성(聖)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평생토록 가져야 할 한마디는 진실한 용서(적극적인 사랑)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다. 용서할 줄 알아야 사랑할 줄도 안다. 용서는 내면의 평화를 열어 주는 열쇠다. "용서하는 마음은 덕을 쌓는 일이다. 친구를 용서하는 것보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가장 나쁜 사람은 용서를 모르는 사람이다."(토마스 풀러) 친구란 가까운 사람을 이야기한다. 원수란 멀리 있는 관계일수도 있고 모르는 사람일수도 있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나, 부모 형제나, 부부사이를 말 할 수 있다. 마음으로는 용서하고 싶지만 현실에서 가까운 사이가 더 용서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다. 용서는 사람과 사이에서 골짜기 같은 관계에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는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 5:24,25) 라고 한다.

박세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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