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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리말 공동주택

2019-10-10기사 편집 2019-10-10 08: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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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취재 2부 김대욱 기자
취재차 대전의 공동주택 가격을 살펴보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물음표의 대상은 이름이었다. 샘머리, 은초롱은 무슨 뜻을 갖고 있을까.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도 해봤지만, 명확한 뜻을 알긴 어려웠다. 어쨌든 우리말이려니 여겼고, 단어에서 받은 느낌은 맑으면서도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바라보니 주위 공동주택 이름도 비슷했다. 햇님, 향촌, 가람, 녹원, 보라, 한마루, 청솔까지. 단어의 의미 속엔 정겨움이 가득했다. 1990년대 초반, 그 동네에 세워진 공동주택 이름은 대부분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범위와 연대를 확대해봤다. 시기는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범위는 대전 전 지역으로. 자료를 정리하자, 공동주택의 이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동네는 무궁화, 진달래, 백합 등 꽃으로 이름을 지었다. 근처에 천이 흐르는 단지는 강변, 가람, 한가람이라는 이름을 썼다. 푸른뫼, 늘푸른, 누리, 한아름, 보람처럼 순수 한글로만 지은 경우도 있었다. 대규모로 지어진 단지는 은어송마을, 열매마을, 초록마을, 목양마을 등 '마을'이란 표현을 썼다. 동네를 막론하고 그 당시 대전지역 공동주택은 대다수 우리말로 이름을 썼다. 자연이 주는 색감이나 품앗이처럼 이웃 간의 정을 강조하는데 무게를 뒀을 테다. 과거부터 내려온 우리네 정서가 공동주택이라는 새로운 주거공간에 투영된 셈이다.

근래 세워졌거나 세워질 공동주택 이름은 그렇지 않다. 해링턴플레이스, 칸타빌, 엘크루, 베르디움, 린풀하우스, 로제비앙처럼 기억은 나지만 선뜻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주거공간으로만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재산재'로 인식을 하게 되면서 이름을 짓는 추세 또한 바뀌고 있단다. 주택 가격이 상승하길 바라는 기대심리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우리말을 공부하는 친구에게 이에 대해 묻자 "예전에 한자를 잘 읽거나 쓰면 유식해 보이는 효과랑 비슷해"라고 했다. 1990년대 공동주택 이름이 산뜻하고 신선했다면, 2010년대 이후는 무겁고 엄중해 보였다. 고급화전략이라지만 이상리만치 속이 허했다.

외래식 표현이 많아지다 보면, 다시금 우리말이 빛을 보는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희소성의 개념이자 기대감일 테다. 취재 2부 김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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