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긴밀한 사회적 관계는 최대 150명이라고 한다. 이는 진화심리학자인 영국의 던바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른 것으로 150은 `던바의 `수`라고도 불린다. 절친은 아니더라도 친구라고 볼 수 있는 관계의 최대치를 의미하는데, 아무리 사교적이고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인간의 사회적 뇌가 수용할 수 있는 친구 관계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요즘은 오프라인에서의 관계 맺기를 넘어서 온라인 상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을 알아나가게 된다.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알려주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도 수백 명의 사람들과 아는 사이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SNS에서 누른 `좋아요`는 내가 어떤 성향을 지닌 사람인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심지어 정치적인 성향까지도 드러낸다. 인터넷에서 접하는 격한 감정으로 덧발라진 무작위적 댓글들 보다 온라인 상 친구의 게시글은 쉬 공감이 간다. 하지만 나와 다른 견해를 단 댓글에 분노하면서, 나와 같은 성향의 글은 의심하려 들지는 않는 태도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네트워크가 확장될수록 관계의 밀도는 줄어든다. 관계의 적절함의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폐쇄적으로 되어가고 소규모의 친밀한 관계만을 유지하려던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관계가 확장될수록 그 의미에 대해서 스스로 되묻게 된다. 어린 시절엔 관계에 의해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웠다면 지금은 주어지는 정보나 견해를 나의 가치관에 의해 섣불리 재단하거나 인식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된다. 쏟아지는 엄청난 정보에 이성보다는 직관이 우세하게 작용하는 것을 보면 혼란스럽다.

진실보다는 불공정한 객관성이 난무한 현실에서 새로운 뉴스를 받아들이고 판단하기 쉽지 않다, 매일 벌어지는 일 들 속에서 진실 혹은 거짓인지가 중요하지 않은 국면을 많이 보게 된다. 인식이 증거보다 더 중요하고, 더 나아가 진실은 상관없다는 말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대사가 아니고 현실 세계이다.

나이가 들면 경험치로 저절로 알아지는 깨달음은 없는 것 같다, 도리어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참된 지知는 사람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던 `알 수도 있는 사람`이던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무지(無知)함이 아닌 조금은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면 오늘 하루도 의미 있을 것이다.

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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