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 시인
손미 시인
친구가 사진을 보냈다. 자동차가 뒤집혀 있는 사진. 내 자동차와 같은 모델인 빨간 자동차의 사방 유리는 깨진 채 거의 프레임만 남아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트럭에 치였어.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려고 우회전을 했거든. 뒤에 따라오던 트럭이 나를 그대로 받아쳤어. 그렇게 친구의 자동차는 360도로 데굴데굴 굴렀다. 친구는 그것을 주사위 같았다고 표현했다.

다친 데는 없어? 몸은 괜찮아? 나의 다급한 물음에 친구는 일러줄 것이 있다는 듯 단호하게 얘기했다. 너도 차 바꿔! 우리 차는 안 되겠어. 나는 친구의 말에 답을 하지 않고 다시 질문을 보탰다. 그래서 몸은 괜찮냐고.

친구는 잠깐 동안 자동차 안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고 했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차들이 다 보였다고 했다. 그 와중에 친구가 했던 일은 머릿속으로 악보를 그리는 것. 피아니스트인 친구는 얼마 후 독주회를 앞두고 있었다. 나 거꾸로 매달려서 머릿속으로 악보 상상하고 연주했어. 머리 다치면 안 되니까. 계속 그것만 상기했어. 친구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징글징글했다. 그리고 또 뭐 했는지 알아? 목에 감긴 머플러 풀어서 손에 감쌌어. 손 다치면 끝이니까. 정말 손을 감싸고, 연주할 곡만 계속 생각했어. 왜 그렇게까지 했어? 하는 나의 물음에 친구는 답했다. 피아노가 아니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 말끝에 나는 울컥했다. 시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니까 라고 그 말을 나에게 대입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시마(詩魔)라는 말이 있다. 시 마귀라는 뜻이다. "네가 오고 나서 모든 일이 기구하기만 하다. 흐릿하게 잊어버리고 멍청하게 바보가 되며, 주림과 목마름이 몸에 닥치는 줄도 모르고…"라고 문장가 이규보 선생은 이것을 설명했다. 시마가 오면 얼이 빠진 사람처럼 시 말고는 아무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시마가 와서 한 때는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시를 썼다. 매일 같이 가방에 시를 품고 다녔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시마가 오면 온 몸에 힘을 풀고, 나는 기꺼이 그 재물이 되었다. 그게 그렇게 황홀하고 좋아서 나는 자주 울었다. 시를 쓴다는 건 이 세상이 나로 꽉 채워지는 기분. 그것만큼 나를 충만하게 하는 것이 없어 나는 매일 같이 미친 듯이 문장을 찾고 피부의 감각을 열어 시 귀신이 찾아오길 기다린다.

찬바람이 분다. 신춘문예 앓이가 시작되는 계절이다. 내년 1월 1일에도 어떤 이는 당선되고 다수는 떨어질 것이다. 떨어질 무수한 시마들에게, 그럼에도 숯덩이처럼 뜨거운 당신들에게 미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손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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