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미술관] 김소울 지음/일리/ 364쪽/ 1만 7000원

그림의 힘은 세다. 사람들을 감동에 몸을 떨게 할 수도 있고,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다. 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그림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림의 힘을 상징하는 대표적 표현이 `스탕달 신드롬`이다.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Stendhal)은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성당에서 귀도 레니(Guido Reni)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를 보고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경을 맛봤다. 그는 "아름다움의 절정에 빠져 있다가 천상의 희열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했다. 모든 것이 살아 일어나듯 내 영혼에 말을 건넸다"라고 일기에 썼다. 그 일화가 계기가 돼 훌륭한 예술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고 황홀경 같은 강한 감정에 빠지는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격렬한 흥분이나 감흥, 우울증 현기증 등 각종 분열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빈센트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역사에 남은 예술가들은 항상 극단적인 마음의 병과 싸웠다. 극심한 정신적 고통은 그들을 괴롭게 하는 동시에 예술적 영감이 되기도 해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미술과 미술치료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임상 경험을 축적해 미술치료실을 운영하고 있는 미술심리치료 전문가가 예술가의 삶을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낸 흥미진진한 신간이 출간됐다. `치유미술관`은 미국 미술치료학 박사인 저자 김소울이 자신을 대리하는 인물 `닥터 소울`을 내세워 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본문이 속도감 있는 일문일답, 대화체 형식으로 이뤄져 있어 흡인력이 높은 것도 `치유미술관`의 큰 특징이다. 화가들이 한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아픔과 내면적 갈등, 또 마음의 병을 어떻게 명화로 승화시켰는지 보여준다. 그들이 고통을 이기고 명화를 그리는 과정을 다뤘다.

내담자는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유명화가들이다. 조금은 낯설 수 있는 베르트 모리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등 여류화가들도 있다. 모두 15명.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인물들이다. 그들 모두 마음이 아파 고통 받았었다. 때로는 동정받기도 했고, `문제화가`로 손꼽히기도 했다.

`베아트리체 첸치`는 레니가 존속 살해죄로 참수형을 앞둔 22살 꽃다운 처녀 베아트리체 첸치를 그린 것이다. 그녀는 `짐승`같은 아버지 프란체스코 첸치(Francesco Cenci)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등 온갖 학대를 견디다 못해 계모 등 가족들과 함께 둔기로 아버지를 때려죽인 뒤 추락사로 위장했다. 그러나 `위장`이 발각돼 체포되었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녀는 8년여 동안 감옥에서 지내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현재는 엘리자베타 시라니(Elisabetta Sirani)가 레니의 작품을 모사한 베아트리체 첸치`가 더 유명하다. 베아트리체의 고뇌와 슬픔을 더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라니의 감정이입이 한 몫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라니의 아버지는 원래 화가지망생이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때문에 딸에게 집착하며 스파르타식 그림 교육을 시키는 등 강압적으로 양육했다고 한다. 시라니는 17살 어린 나이에 화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전도유망한 화가였다. 아버지는 그런 딸의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술주정꾼 아버지는 딸에게 더 많은 그림을 그리라고 압박했고, 이 때문에 시라니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베아트리체 첸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그 그림을 모사하며 자신의 내면을 반영했고, 그래서 원작보다 더 애잔한 표정을 그려낼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처럼 스탕달은 `베아트리체 첸치`를 `감상`하면서 그림의 힘을 경험했다. 시라니는 `베아트리체 첸치`를 `그리면서` 그림의 힘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 힘은 아마도 시라니가 그림 그리기에 `몰입`하며 느낀 마음의 평화였을 것이다. 화가들은 흔히 주변 상황을 의식하지 않고 그림에만 집중하는 삼매경에 빠진다. 그 과정에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분출하고 정화한다. 또 불안이나 상처를 극복하거나 갈등을 해소하기도 한다. 시라니도 그림을 그리며 `아버지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버거운 일상을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시라니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학대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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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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