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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화가를 마주한 시간

2019-10-02 기사
편집 2019-10-02 17:39:23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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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미술관] 김소울 지음/일리/ 364쪽/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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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은 세다. 사람들을 감동에 몸을 떨게 할 수도 있고,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다. 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아픔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그림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림의 힘을 상징하는 대표적 표현이 '스탕달 신드롬'이다.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Stendhal)은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성당에서 귀도 레니(Guido Reni)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를 보고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경을 맛봤다. 그는 "아름다움의 절정에 빠져 있다가 천상의 희열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했다. 모든 것이 살아 일어나듯 내 영혼에 말을 건넸다"라고 일기에 썼다. 그 일화가 계기가 돼 훌륭한 예술작품을 보고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고 황홀경 같은 강한 감정에 빠지는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격렬한 흥분이나 감흥, 우울증 현기증 등 각종 분열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빈센트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역사에 남은 예술가들은 항상 극단적인 마음의 병과 싸웠다. 극심한 정신적 고통은 그들을 괴롭게 하는 동시에 예술적 영감이 되기도 해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미술과 미술치료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임상 경험을 축적해 미술치료실을 운영하고 있는 미술심리치료 전문가가 예술가의 삶을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낸 흥미진진한 신간이 출간됐다. '치유미술관'은 미국 미술치료학 박사인 저자 김소울이 자신을 대리하는 인물 '닥터 소울'을 내세워 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본문이 속도감 있는 일문일답, 대화체 형식으로 이뤄져 있어 흡인력이 높은 것도 '치유미술관'의 큰 특징이다. 화가들이 한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아픔과 내면적 갈등, 또 마음의 병을 어떻게 명화로 승화시켰는지 보여준다. 그들이 고통을 이기고 명화를 그리는 과정을 다뤘다.

내담자는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유명화가들이다. 조금은 낯설 수 있는 베르트 모리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등 여류화가들도 있다. 모두 15명.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인물들이다. 그들 모두 마음이 아파 고통 받았었다. 때로는 동정받기도 했고, '문제화가'로 손꼽히기도 했다.

'베아트리체 첸치'는 레니가 존속 살해죄로 참수형을 앞둔 22살 꽃다운 처녀 베아트리체 첸치를 그린 것이다. 그녀는 '짐승'같은 아버지 프란체스코 첸치(Francesco Cenci)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등 온갖 학대를 견디다 못해 계모 등 가족들과 함께 둔기로 아버지를 때려죽인 뒤 추락사로 위장했다. 그러나 '위장'이 발각돼 체포되었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녀는 8년여 동안 감옥에서 지내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현재는 엘리자베타 시라니(Elisabetta Sirani)가 레니의 작품을 모사한 베아트리체 첸치'가 더 유명하다. 베아트리체의 고뇌와 슬픔을 더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라니의 감정이입이 한 몫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라니의 아버지는 원래 화가지망생이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때문에 딸에게 집착하며 스파르타식 그림 교육을 시키는 등 강압적으로 양육했다고 한다. 시라니는 17살 어린 나이에 화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전도유망한 화가였다. 아버지는 그런 딸의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술주정꾼 아버지는 딸에게 더 많은 그림을 그리라고 압박했고, 이 때문에 시라니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베아트리체 첸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그 그림을 모사하며 자신의 내면을 반영했고, 그래서 원작보다 더 애잔한 표정을 그려낼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처럼 스탕달은 '베아트리체 첸치'를 '감상'하면서 그림의 힘을 경험했다. 시라니는 '베아트리체 첸치'를 '그리면서' 그림의 힘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 힘은 아마도 시라니가 그림 그리기에 '몰입'하며 느낀 마음의 평화였을 것이다. 화가들은 흔히 주변 상황을 의식하지 않고 그림에만 집중하는 삼매경에 빠진다. 그 과정에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분출하고 정화한다. 또 불안이나 상처를 극복하거나 갈등을 해소하기도 한다. 시라니도 그림을 그리며 '아버지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버거운 일상을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시라니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학대를 치유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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