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나에게,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 소설가 김훈의 기행산문집 `풍경과 상처` 서문의 첫 문장이다. 이십 여 년 전 읽었던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라는 김훈의 단박한 문장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다. 풍경을 바라볼 때 옛 기억과 섬광처럼 마주함은 내면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 있었던 감정들을 만나게 한다.

사진 작업을 하는 나는 풍경을 통해 삶과 타인에 대해, 그리고 풍경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삶 속에서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언젠가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일상의 주변에서 마주한 낡고 퇴락해가는 장소와 그곳에 황량하게 남아있는 사물들을 담은 나의 풍경 작업들은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았던 상처와 연민의 시선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 무심한 듯 외면하려 했지만 왠지 가슴이 슬쩍 긁힌 듯 둔한 쓰라림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작고 묘한 들뜸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주 이런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마주하는 순간에 말이다.

사진 찍는다는 행위는 그 사이에 있다. 스쳐 지나치거나 무시될 수 있었던 장소와 사물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어 특별한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프레임에 담기면 그것은 단지 정지된 사물이 아니라 감정이 깃든 사물로서 삶의 단면을 품게 된다.

어떤 공간 혹은 장소를 `본다`는 것은 현재의 시간 속에서 바라보는 것만은 아니다.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과 공간 위로 살아 움직인다. 내가 마주한 순간만을, 셔터를 누르는 찰나적 순간만을 프레임에 담아내지만 이 사물들이 공간 안에서 견뎌낸 시간들은 대상에 쌓여있는 누적된 흔적들을 통해 드러난다.

장소는 표면적인 외양보다 훨씬 깊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장소를 덮거나 채우고 있는 작은 질감들이 몸속에 기억되어 있는 풍경에 대한 기억과 정서, 감정을 환기시킨다. 더욱이 아직 살아있지만 사라져가는 어떤 것이기에, 곧 사라지고 잊혀질 이 장소와 사물들에 대한 연민은 그것들을 이미지로 부여잡고 다시 새로운 생기와 의미를 부여하고 싶게 한다.

결국 풍경이란 지금의 나와 눈앞의 세계가 만날 때 내 자신의 내면의 프레임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세계는 그것을 보는 나의 시선과 마음에 의해 재현된다.

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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