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기자
김성준 기자
8만 5714마리... 지난달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이후 살처분된 돼지 숫자다.

ASF 확진 판정을 받으면 확산을 막기 위해 반경 3km 내 돼지들에게 살처분 명령이 내려진다. ASF는 감염 시 치사율이 100%에 달하지만 구제역과 달리 치료제나 백신이 없기 때문이다.

ASF 외에도 매년 수 많은 동물들이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전염병으로 인해 산채로 땅에 묻혀 죽음을 맞는다. 좁은 공간에 가축을 밀집해 사육하는 탓에 감염병에 취약한 공장식 축산의 폐해다. 이제부터라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방목 등 가축 사육방식을 친환경적으로 바꾸거나 배양육(인공고기)을 통해 기존 육류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논의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문제 인식과 공론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지금까지 살처분 된 돼지 숫자가 파주, 연천, 김포, 강화로 이어지며 어느덧 9만 마리를 향해 가고 있다.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언론을 통한 정보는 다소 피상적으로 다가온다. 돼지 10만 마리의 죽음을 단순히 숫자로만 헤아리는 정제된 감정이 혼재하고 있는 탓이다. 돼지 1마리라도 직접 산 채로 묻어본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절절히 다가올 것이다.

고대 그리스 극작가 아이스킬로스는 "학습하는 인간은 반드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사안에 대한 고통을 몸소 겪을 때 공감하고 비로소 학습하게 된다는 것이다. ASF로 살처분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이야 말로 직간접적 경험을 통한 문제인식과 반성이 필요한 것 같다.

일반 시민들이 살처분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느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살처분 작업자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그래서도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언론을 통해 살처분 현장을 간접 경험하도록 하면 어떨까. 끔찍한 장면을 보도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많지만, 더욱 자세하게 다뤄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앞으로 동물 살처분이 없어지려면 동물전염병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간접 경험을 통한 사회구성원들의 살처분에 대한 인식전환을 주문하고 싶다. 김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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