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우리미술관의 소장품 중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대전엑스포`93` 출품작인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1993)과 제목처럼 왕관을 쓴 부처의 좌불상이 연상되는 `부다킹`(1997)일 것이다. 천 여 점의 우리 미술관 수집 작품 중 백남준을 먼저 거론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라는 전혀 새로운 현대예술의 계보를 만든 세계적인 예술가이며, 둘째는, 그의 작품 `프랙탈 거북선`이 대전시의 국제적 도시로의 도약에 기여한 때문이다. `프랙탈 거북선`은 `대전엑스포`93` 특별전시에 출품되었고, `대전엑스포`93`은 과학도시 대전의 성격규정의 시작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미술의 역사에서 20세기 이후 도시는 아방가르드 예술을 부추겨 왔다. 도시와 예술가는 이렇게 서로에게 새로운 의미가 된다. 백남준과 인연이 깊은 도시는 또하나 있다. 1963년 3월 11일, 세계 최초의 `비디오 아트` 전시로 평가되는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이 열린 독일 뒤셀도르프 인근의 작은 도시 부퍼탈이 바로 그곳이다. 세계 미술사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킨 사건이 된 이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기능을 상실한 피아노나 텔레비전 등 몇 점과 당시의 기록사진들, 그리고 전시를 본 지인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그러나 백남준 스스로의 표현대로 "극동 소국의 무명청년"이었던 그의 전시는 작은 무명의 도시 부퍼탈에서 열렸고, 전 세계인들에게 부퍼탈은 `비디오 아트`의 역사적 시작지라는 신화의 장소가 되었다.

세계적인 안무가인 피나 바우쉬는 백남준을 기억하는 부퍼탈을 `예술`이 `도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시켰다. 피나 바우쉬는 1973년부터 현대무용단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였다. 탄츠테아터는 영어로 `Dance Theatre`, 말 그대로 무용과 연극을 결합한 전위적인 형태의 무용이다. 2008년, 피나 바우쉬는 한번도 무용을 배워본 적 없는 십대 청소년 46명을 무용수로 기용하고 자신의 대표적인 작품 `콘탁트호프(Kontakthof)`를 공연하기로 결정한다. `콘탁트호프`는 첫사랑의 시간을 통해 온몸으로 경험하게 되는 긴장과 불안, 설레임과 부끄러움, 두려움과 환희 등 복합적인 일상의 감정을 독특한 몸짓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부퍼탈 인근의 열두 개 학교의 이들 청소년은 열 달 동안 무용을 배우고 연습하여 이를 무대에 올렸다. 사실 산업도시인 부퍼탈은 당시 이주노동자들의 소외와 고립 등이 문제였던 도시였는데, 청소년들은 춤을 통해 부모, 친구, 이웃들 속에서 그간 소외와 고립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언제나 `인간`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소통`을 작품의 중심 테마로 삼는 피나 바우쉬의 `예술`을 통해 `도시`를 사는 사람들의 소통과 관계가 살아나고 삶이 살아났던 것이다.

`대전`의 백남준과 `부퍼탈`의 백남준, 그리고 피나 바우쉬를 통해 `예술`과 `도시`의 관계를 새삼 떠올린다. 그리고 `예술`의 역할도 되새겨 본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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