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 기자
조수연 기자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난쟁이 가족에게 철거 계고장이 날아온다. 아파트 입주권이 나오긴 했지만 입주할 돈이 없어 입주권을 헐값에 팔고 떠날 수 밖에 없다. 헐릴 집을 새로 지으려면 130만 원이 필요한데, 입주권은 22만 원이고 거기서 전세금을 빼면 7만 원이 남는다. 130만 원짜리 집을 잃고 7만 원을 받는 셈이다.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의 줄거리다.

대전시 동구 소제동 철도관사촌 일부가 역세권 개발구역으로 묶여 헐릴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낡았지만 세월의 멋이 깃든 이 동네를 오랜 시간 지켜온 주민들은 정든 집을 떠났다. 재철거와 재건축이라는 도시재개발의 중심에 놓인 이곳에 들어서자, 소설 `난쏘공`이 떠올랐다. 그나마 개발 구역에서 빠진 구역에는 외지에서 온 카페, 식당 등 민간자본이 속속 자리잡았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며 시대에 따른 변화를 정면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착한 사람은 가난하고 희생당하는 반면, 악한 사람은 잘 살고 사회적 약자를 괴롭힌다는 흑백논리로만 대응 하거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집으로 변질돼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것은 대전시민 조차 소제동의 진가를 알기도 전에 민간자본이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개발은 쉬워도 복원은 어렵다. 급속한 개발이 낳은 현실의 모순에 눈뜨고 극복방안을 모색하려는 단순함과 순수함이 절실한 이유다.

이제라도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발견하고 문화·예술, 기록학, 도시계획 등 다양한 전공분야의 종사자들과 연계해 대전의 근대 및 근대 공간에 대한 분석과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소제동과 대전의 근대 유산을 재조사해 이를 인프라로 하는 새로운 도시경관과 문화를 디자인하고, 이를 대전시의 문화재 행정과 도시개발 분야에 적용해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에 대한 존중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땅에는 저마다 무늬가 있다. 종으로, 또 횡으로 새겨진 그 무늬들을 흔히 `터무니`라 부른다. `터무니없다`는 말은 우리가 서 있는 땅의 결을 모르거나, 충돌하는 상황을 말한다. 소제동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 지 모르지만, 역사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방향은 그야말로 `터무니 없는` 일이다. 깊이 있고 정교한 고민이 함께한다면, 대전 땅을 밟는 이들에게 오랫동안 감동적인 일로 남을 것이다. 조수연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조수연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