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동네 어르신께서 그리신 아주 오래전 대전역 동광장은 지금은 볼 수 없는 시원한 아름드리나무와 철도보급창고들이 어우러져 있는 광장이었다. 현재 이곳은 등록문화재인 대전역 철도보급창고(제3호)를 수십 대의 차들이 빼곡히 둘러싼 커다란 주차장이다. 기록사진에서 보여 지는 경관이 아닌, 수십 년을 이 지역에서 살아오신 어르신에게 기억된 장소의 이미지는 한 장소가 문화적으로 품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지난여름부터 작가들과 함께 대전역 인근에 있는 경로당 어르신들을 모시고 그림수업과 사진수업을 해왔다. 급격히 변화되고 있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르신들이 자신을 표현할 기회는 더더욱 줄고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참여할 기회 또한 축소된다. 더욱이 수십 년을 살아왔던 마을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삶의 환경마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하지만 한 장소에서 오랜 삶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기억의 창고에는 펼쳐낼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두 달여의 철도마을 어르신들과 함께한 예술수업과정은 오랜 세월 쌓여있던 어르신 자신과 마을의 이야기들을 다양한 미술표현을 통해 작품으로 완성해보며, 고난 했던 삶이기도 했지만 청춘의 오랜 시간들이 쌓인 동네의 추억을 끄집어 내오는 시간이었다.

요즘의 삶은 자신이 태어난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살지 않고 일생 여러 번 이동하거나 이주한다. 그렇기에 수십 년의 세월을 한마을에서 함께 한 그 수많은 기억의 장면 속에서 뼈마디 굵은 손으로 담아낸 이야기들은 감동을 자아낸다.

이번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대전전통나래관에서 시작되는 특별한 전시, `우리인생 드로잉 & 우리 마을 소소풍경전`에서 철도마을 어르신들의 작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한 달여 진행되는 이 전시는 어르신 당신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과 주민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동네풍경사진을 통해 대전 철도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새로운 도시들은 유서 깊은 과거가 없다. 과거의 유형의 장소가 남아있거나 기억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결국 지나간 어느 한때였을 지도 모를 모든 순간과 장소들은 개인과 집단의 기억 속에 남아 역사가 된다. 철도마을 어르신들의 개개인의 기억은 모여 도시 역사의 한 부분이 되고, 장소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성희 소제창작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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