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기만 한 사랑

홍민정 을지대학교병원 외상중환자실 파트장
홍민정 을지대학교병원 외상중환자실 파트장
최근 방영중인 주말드라마에는 홀로 세 딸을 키우는 엄마가 등장한다.

기침 증상이 심해져 딸들에게 병원에 함께 가자고 부탁을 하지만, 큰딸은 시어른 댁에 방문해야 했고 둘째 딸은 임신 중으로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막내딸은 엄마의 증상을 가볍게 여기고 만다. 엄마는 딸들을 이해하려 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홀로 동네 병원을 찾는다.

동네 병원 의사는 큰 병원에 가야한다고 했고, 그렇게 또 엄마는 혼자 큰 병원을 찾는다.

엄마의 진단명은 폐암 말기,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

질병을 부정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는 엄마, 제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자녀들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을까.

엄마의 증상은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집에서 쓰러지고 만다. 병원에 입원한 후, 그제야 엄마의 병명을 알고 눈물을 흘리는 딸들의 모습을 보며 필자 또한 부모님을 떠올렸다.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기까지 필자의 부모님도 나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간염을 앓아 병원에 긴 시간 입원했을 때 지극 정성으로 간호해주셨던 기억, 중·고등학교 시절 아침저녁으로 안전한 등·하교를 책임져주셨던 기억. 여러 가지 모습들이 스친다.

부모 또한 사람이기에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많으셨겠지만 자식인 나를 먼저 늘 생각하셨다.

수험생 시절 영양 가득한 도시락과 간식을 매일 잊지 않으셨고, 대학 시절에도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게 등록금도 지원해주셨다.

3교대 근무로 중환자들을 돌보고, 사회 초년생으로 힘들어 할 때도 항상 부모님은 든든한 내편이었다.

그런 부모님께 필자는 어떤 모습인지를 생각해본다. 사실 이 질문에 확신을 갖고 대답하기가 어렵다.

부모님께서 주신 조건 없는 관심과 사랑을 때로는 귀찮아했고, 그저 힘들다는 이유로 짜증도 냈다.

무엇보다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나도 부모의 위치에 있다.

2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 나를 돌아본다. 하지만 내 부모가 나에게 해주는 것만큼 잘해내고 있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고, 벌써부터 이런 저런 후회가 밀려온다.

이제 부모님 나이 앞 숫자는 7이 자리 잡았고, 아무리 백세시대라 한들 앞으로 필자와 함께 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자꾸만 마음이 급해진다.

요즘 같은 환절기에 건강은 괜찮으신지, 끼니마다 식사는 잘 챙겨 드시는지, 식후 드셔야 할 약은 잘 챙겨 드시는지. 수시로 묻고 확인하게 된다.

부모가 자식에게 행하는 사랑보다 더 크고 높으며, 넓고 깊은 것이 어디 있겠나 싶다.

하지만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자식으로서 행할 수 있는 일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전에 한 친구가 필자에게 `넌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친구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떤 모습이든 좋으니 내 옆에 살아만 계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는 사실 그 의미가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 그 친구의 말의 의미, 그리고 마음이 너무도 강하게 느껴진다.

어버이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그때그때 표현하지 못하면 시간은,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후배 간호사들에게 급여일, 명절이나 공휴일, 주말 등에 부모님께 안부 묻는 전화를 꼭 드리라고 이야기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엿한 간호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오롯이 `부모님 덕분`이라고 이야기해도 지나침이 없다.

홍민정 을지대학교병원 파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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